체질개선 “고단위 처방”/내년 경제운용계획<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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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내수억제서 오는 실업은 제조업에 흡수/「고통」참을 의지에 성패
내년도 우리경제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비슷하다.
요즘같은 상황을 두고 보다가는 나라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고 「상황타개」를 위해선 비상한 결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경제 최대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실속없는 성장」이다.
9%에 육박한 올해의 성장은 내수과열·수입확대·국제수지적자에 바탕을 둔 「가불성장」에 불과하며 이같은 성장의 가불구조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나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한은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도 성장률을 7.5∼8%로 예측하면서 이를 7%로 낮추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장한 것은 이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가 내년도 경제운용의 기본방향을 국제수지개선과 물가안정에 두고 이를 위한 핵심과제로 「성장억제」를 들고나온 것도 물론 같은 판단에서다.
정부예측으로 내년 성장률은 「내수진정책의 강도가 약할 경우」8%수준이 가능하나 이 경우 경상수지적자는 1백억달러를 넘고 소비자물가는 두자리수로 뛰어오를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운용계획을 내면서 성장을 「희생」「억제」하겠다고 나선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성장률은 높을수록 좋다는 믿음이 뿌리깊게 깔려있는 우리사회에서 기업도산·실업률의 증가로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한 감속성장을 채택하고 나선 것은 대단한 인식의 변화다.
이같은 감속정책의 필요성은 올해도 꾸준히 제기됐고 건설경기진정책등으로 부분적으로 표출됐지만 총체적인 노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른바 「현실적인 어려움」이 늘상 제기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리경제의 적정성장률이 7%라는 말을 수차례 해오면서도 급속한 성장감속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위해 92∼93년에는 8%,그후에는 7%로 단계적 감축에 나설 뜻을 밝혀왔었다.
그러나 이같은 단계적 감속정책은 우리경제의 속병을 깊게하고 체질개선만 늦출뿐이란 판단에서 적극적인 감속정책이 채택됐다.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성장·물가 몇%,국제수지적자 몇십억달러하는 「숫자」가 아니고 성장을 억제해서라도 물가·국제수지를 잡기로한 「선택」이다.
민간소비와 건설투자등 내수를 적극적으로 억제하며 이 경우 높아질 실업률(올해 2.3%에서 내년 2.6%)은 제조업인력난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의 변화」가 보다 의미있는 것이다.
정부의 경제운용계획에는 이른바 「정책의지」가 감안되어 있고 따라서 제시된 숫자는 다소 낙관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계획상의 수치들이 「낙관적」으로 보이게끔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번번히 경험해온 「정책의지」의 실종이다.
올해만해도 정부는 성장 7%,물가 8∼9%,경상수지적자 30억달러를 제시했었으나 결과는 성장 8.6%,물가 9.7%,경상수지적자 95억달러라는 남부끄런 성적표였다.
이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요인은 8.6%로 나타난 실속없는 성장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의지빈약」이다.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에서 제시된 보다 세부적인 중점 추진과제는 올해 했어야할 것들이 상당수 넘겨져있다. 이중에는 각 경제주체들이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할 것들이 많다.
내년의 경제운용에서 정부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감속성장은 그 실상이 「거품」을 터뜨리는 것이라해도 인기없는 일이며,더욱이 내년은 인기영합이 판을 칠 「선거의 해」다.
자칫하다가는 우리경제의 고질인 분석과 대응방식의 괴리,예컨대 구조조정과 기업퇴출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산업합리화」를 빙자한 퇴출지연이 이뤄지고 자금난과 고금리를 내세워 통화의 공급확대를 의미하는 「신축운용」이 논의되는 모순된 행동이 횡행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정부는 이같은 못된 외풍을 차단하고 체질개선을 위한 「쓴약」을 끝까지 삼키는 모습을 고통을 함께 감내해야할 국민에게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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