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통합 50년 맞는 유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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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통합 50주년을 앞두고 유럽 곳곳에서 자축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13일 영국의 축구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유럽 올스타팀의 'EU 탄생 50주년 축하 경기'를 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EU 27개국 정상이 5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독일 베를린, EU의 밑거름이 된 로마조약을 탄생시킨 이탈리아의 로마, 유럽의회가 있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이번 주말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시민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경제 상황이 영 호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유로화 도입 후 몇 년 새 크게 오른 물가가 가장 큰 불만거리다. 파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쥐스틴 르그랑(25.여)은 "음식점이나 의류 구입비 등이 유로화 도입 이전보다 꼭 두 배는 올랐다"며 "임금은 그대로인데 주요 생활물가가 급등했기 때문에 삶의 질은 훨씬 떨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 "경제 더 나빠졌다"=최근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EU 가입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EU 가입 후 생활수준이 나빠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 가까운 44%에 달했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25%에 불과했다.

영국 국민의 52%가 '생활수준이 퇴보했다'고 답한 반면 스페인의 경우 53%가 '생활수준이 나아졌다'고 답했다. 유럽 국가 가운데서도 통합에 대한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시각 차이에 대해 프랑스 언론은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이 프랑스.독일.영국 등 몇몇 나라가 나머지 EU 가입국을 먹여살리느라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복잡해진 관공서 업무도 '통합 피로증'을 높이는 요인이다. FT 설문 보도에 따르면 EU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이 관료주의(20%)였다.

◆ 통합 명분에는 공감=그러나 유럽 국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끈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인 CSA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71%가 유럽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특히 젊은이들과 관리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긍지의 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국민투표로 유럽 헌법을 부결시키면서 유럽 통합에 제동을 건 프랑스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23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공개한 설문조사에서 EU가 50년 후에도 존속할 것이란 응답은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에서 모두 80%를 넘어섰다. 그러나 좀 더 현실적인 문제로 접근해 EU가 하나의 대통령을 가진 유럽합중국이 될 것이란 답변은 30~40%대에 그쳤다. 유럽인들이 하나의 유럽에 대한 이상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피부로 느껴지는 팍팍한 경제 현실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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