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퇴임 준비 '선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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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윤태영(46.사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난다. 청와대는 23일 사의를 표명한 윤 비서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김경수(40) 제1부속실 행정관을 승진 기용했다고 발표했다.

윤 비서관은 2003년 2월 출범한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의 원년 멤버다. 특히 비서관급 이상에서 4년1개월 동안 청와대에서 계속 근무해 온 유일한 인물이다. 맡은 직책만도 연설비서관-대변인-1부속실장-연설기획비서관-대변인-연설기획비서관 등이다.

문재인 비서실장과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조차 건강 악화 등으로 10개월 정도 청와대를 떠난 일이 있지만 윤 비서관은 대변인을 두 차례나 하며 변함없이 노 대통령 곁을 지켰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대통령의 복심(腹心)' '대통령의 그림자' '노무현의 필사(筆士)'다.

그는 매일 오전 노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관저 회의의 단골 멤버였다.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면담에도 빠짐없이 배석해 기록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해외 순방 때면 동포간담회 등에서 대통령의 말을 노트북에 빼곡히 받아 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청와대 내에선 "윤 비서관의 노트북에는 노무현 정부의 모든 게 담겨 있다"는 얘기까지 있다.

권력의 크기를 대통령과의 물리적 거리로만 측정한다면 그는 첫 줄에 자리매김할 인물이다. 힘이 쏠리면 자연 견제하는 그룹도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청와대 내에서 그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통한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스타일로 이광재.안희정으로 대표되는 386 그룹과 문재인.이호철로 대표되는 실세 그룹을 연결하는 완충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도 이런 윤 비서관을 사석에선 "태영씨"라고 부르며 신임해 왔다.

그런 만큼 그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뜻밖이다. 그는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지난달 이병완 전 비서실장이 그만둘 때 대통령께 말씀드려 '쉬라'는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건강 때문에 그만둔다는 의미다.

그러나 노 대통령 곁을 아주 떠나는 건 아닌 것 같다. 윤승용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윤 비서관에게 별도로 부여한 일을 자유로운 입장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퇴임 후를 바깥에서 준비하는 일을 맡을 것"이라며 "참여정부의 역사를 기록하고 정리해 책으로 엮는 작업이 주어진 것으로 안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만두는 이유가 뭔가.

"원래 신경을 많이 쓰는 체질이다. 일의 생산성도 떨어지는 것 같아 쉬면서 다른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무슨 일을 할 건가.

"우선 집에서 충전과 휴식의 시간을 보내겠다. 그러면서 그동안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려고 한다."

-18대 총선에 출마할 생각은 없나.

"전혀 생각 없다."

-대통령 퇴임 후 함께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내려갈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아직 결정된 바 없다. 다만 퇴임 후에도 대통령을 돕고 보좌하는 일을 일정 정도는 할 생각이다. 그래서 비서관직을 그만두지만 대통령 곁을 떠난다는 건 안 맞는 것 같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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