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해빙무드 반영여부 관심/26일 선고앞둔 서사연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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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순수학문 활동… 시대착오”학계/“북주장에 동조… 이적해당”검찰
학문자유의 한계 및 범위를 둘러싸고 학계와 공안당국간에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는 서울사회과학연구소(「서사연」·소장 김진균 서울대교수)소속연구원의 논문등 발표사건의 선고가 26일로 다가와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사연사건으로 검찰에 구속기소된 피고인은 신현준(29·서울대 경제학박사과정)·권현정씨등 2명.
당초 이 사건은 지난달 13일과 10월30일 각각 사실심리를 마무리짓고 구형을 해 늦어도 이달초에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대판 분서갱유」라는 비난과 함께 법정의 이론다툼에서 다소 밀리는 듯 하자 검찰이 이적성을 입증할 추가자료가 있다며 변론재개를 요청하는 바람에 구속만기일(28일)이틀전까지 선고가 늦춰지게 된 것.
이 사건으로 국군기무사령부에 의해 구속기소돼 군법회의에 회부된 현역군인 이창휘 상병(27)·송주명 이병(27)에게는 10일 징역 8월·자격정지 1년의 실형이 선고돼 검찰은 크게 위안을 삼고 있으나 민간 법정에서 이같은 군사법원의 판단이 그대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
특히 남북한 「합의서」서명등 중대한 상황변화를 재판부가 판결에 어떻게 반영할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들의 공소사실은 신씨가 지난 3월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따른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선동하는 단행본책자 『사회주의 이론·역사·현실』등을 펴냈고 권씨는 지난 5월 역시 민중민주주의혁명을 부추기는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논문을 발간한 혐의.
검찰은 그동안의 공판과정에서 『책자 등의 내용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 것으로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며 유동열 공안문제연구소 연구원과 홍지영 명지대 객원교수를 감정인 등으로 내세워 유죄임을 주장해왔다.
검찰감정인들은 『논문·책자가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과 내용이 동일한 것으로 이적성이 있으며 세부적인 내용의 차이는 공산주의 국가건설의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변호인측은 『문제가 된 논문들은 대학원과정의 학생들이 습작들을 정리한 것으로 연구의 깊이가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순수학문 활동임이 명백하다』며 이들의 구속은 공안당국의 시대착오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변호인측 감정인 서울대 안병직·이인호 교수 등은 『혁명을 부추겼다는 검찰의 기소내용은 연구과정에서 사회주의 이론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를 토론한 것일뿐 정치목적의 활동과 엄연히 구별되고 더욱이 북한에 동조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북의 주장과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해서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문제삼는 것은 학문·사상의 자유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이적성이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들은 시대적 상황변화에 따른 수사당국과 법원의 새로운 자세와 엄정한 법해석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변론이 재개된후 검찰측 감정인으로 채택된 양동안 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공개적인 감정을 거부해 재판부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거리.
특히 이 사건은 전례없이 많은 지식인·교수등이 「학문의 자유」를 내세워 이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판결결과가 사회학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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