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국제공영에 기여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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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불행한 일이지만 일본에서 어떤 정책지침이 나오면 그 대의명분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선뜻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습성처럼 되어왔다. 정책속에 담긴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일본에 대한 경계와 우려 때문이다.
24일 발표된 일본의 외교청서에 대한 관심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노력에 적극 참가하기로 한 점,아태지역 국가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한 점등 외교청서에 나타난 원칙들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그 목표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기대에 덧붙여 그 정책 실행과정에서 눈여겨 보고자 하는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내용이 청서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외교정책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전제하며 외교의 독자성을 내세워 『일본은 세계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협조 행동면에서 국력에 맞는 책임과 역할담당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일본이 국력에 맞는 책임과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보았던 국가들,특히 우리로서는 그 당연함에 또 이의를 제기할 만큼 일본의 일거수 일투족에 민감하다.
전후 50년 가까이 경제력을 키워온 일본이 이제 정치대국화의 길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다만 일본의 정치대국화 때문만이 아니다.
그 보다도 우리의 눈에는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이는 「군사대국 일본」의 존재가 더욱 우려와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외교청서에서 『헌법의 범위안에서 자위대도,자위대원도 활용해야 한다는 소리와 일본외교의 독자성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머지않아 일본군사력의 해외진출 합법화·합리화하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일본의 국방예산이 매년 증가해 세계3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국가들중 이를 우려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더욱이 소련의 와해로 안보·평화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동북아지역과 관련해서도 일본의 군사력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은 틀림없다.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 가능성에 대해 일본은 스스로 「평화지향적」이란 말로 합리화 하려들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그동안 보여온 속성 때문에 우리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사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극우보수세력의 활동이 일본정부의 견해와 일치하는 예를 우리는 「침략」을 「개입」으로 표기하는 교과서등의 예에서처럼 수없이 보아왔다.
일본이 외교적 독자성을 추구하고 국력에 걸맞는 책임과 역할을 맡는 것은 그러한 잘못된 역사인식을 청산한 바탕에서 국제적인 공영을 가져 오도록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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