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joins.com] 이 나라 개는 '과우과우' 짖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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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인스 블로거 한상호(자영업.사진)씨는 22년째 아르헨티나에서 산다. 취미는 사냥과 낚시다. 이 때문에 노상에서 가끔 자기도 한다. 그의 닉네임은 '형사 콜롬보'. "돈을 좇기 위해 귀한 시간을 할애하느니 어떻게 하면 짧은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연구한다"고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한씨 블로그(blog.joins.com/pejerrey2)에 비친 그만의 행복 비법을 엿보았다.

◆ 2006년 여름=오전 4시반쯤 자명종 소리에 일어났다. 동쪽 하늘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곤히 자는 아들을 깨워 해변에 나갔다. 시원한 갯내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가장 먼저 바다에 나갈 걸 생각해 기분이 좋았는데 낚시 안내인으로 유명한 이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저 인간이 돈독이 올라도 단단히 올랐네~! 바다로 나가 왕새우를 달아 던지니 간헐적으로 낚이던 코르비나(Corvina.대구류에 속한 물고기)가 화끈하게 입질해 바빠서 혼났다. 우리 식구 먹을 만큼은 잡았다. 바다낚시를 가서 고기를 못 잡는 것은 식구들에게 맛있는 회와 매운탕을 못 먹게 하는 일. 가장으로 무능한 것이다. 무조건 다다익선이다.

◆ 2007년 3월 10일=이곳에서 3~4월은 말사슴 사냥 시즌이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엽사들이 비행기를 타고 아르헨티나 땅을 밟는다. 문제는 사냥을 하려면 전문 사냥터를 가거나 공개 경매를 통해 10일간 사냥할 수 있는 '사냥권'을 사야 한다는 점이다. 올해도 10일 단위로 거래되는 사냥권이 1만5000~3만 페소(약 450만원~900만원)까지 치솟아 웬만한 아르헨티나 엽사들은 외국인의 말사슴 사냥을 구경만 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국내 사냥꾼들이 구경만 하지는 않는다. 허가 없이 국유지나 사유지에 몰래 들어간다. 그러니 말사슴 사냥 시기에 야생동물 감시원.주경찰.국경수비대가 불법 사냥꾼을 잡으려고 도로를 감시한다. 불법 사냥꾼은 인적이 드문 곳에 숨기 위해 1인용 텐트와 식량을 장만해 산으로 간다. 내 사냥기에 자주 등장하는 친구 안드레스는 지난달 나랑 사냥을 같이 가지 않았다. 사냥에 대한 정열이 식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불법 사냥에 대한 전의를 활활 불태우는 중이다.

▶콜롬보(나):겁 안 나나?

▶안드레스(안):안 걸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낮에는 자고 밤과 새벽에만 활동할 거다.

▶나:누구랑 가느냐?

▶안:혼자 간다. 알다시피 둘 이상 가면 들키기 쉽다.

▶나:먹는 거는?

▶안:산에 눈이 많고, 개울이 있어 물은 있다. 건조한 음식만 준비해 가면 된다.

▶나:준비는?

▶안:매일 체육관에서 자전거 타기, 역기 들기 등 체력단련을 한다.

▶나:돈 주고 허가된 사낭터에 들어가면 안 되나?

▶안:불법 사냥은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고, 담대함을 길러준다.

▶나:걸려서 지역 신문에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2007년 3월 17일=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지구 반대쪽에 있다. 인종.문화.전통이 다르다 보니 생활습관도 차이가 크다. 닭 우는 소리를 한국은 '꼬끼요~'라고 하지만 이곳은 '끼끼리끼끼~'라고 흉내낸다. 개 짖는 소리는 한국선 '멍멍', 이곳에선 '과우과우'다. 이곳에선 손님이 물건을 사갈 때 그라시아스(Gracias.감사합니다) 라고 한다. 한국에선 물건 사면서 고맙다고 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서 그렇다. 손님이 사고 싶은 물건을 준비해 준 가게의 주인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손으로 숫자를 셀 때 한국은 손바닥을 편 상태로 손가락을 구부리고, 이곳은 주먹을 쥔 상태에서 손가락을 편다. 인사할 때 한국은 고개를 숙이지만 이곳은 고개를 쳐든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꾸짖을 때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시선이 바닥을 향하지만 이곳에선 시선을 피하면 선생을 무시한다고 해 더 혼난다. 한 가지 더. 버스운전사가 가끔 운행을 중단하고 동료 운전사와 잡담을 나누거나 아예 차를 세워놓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와도 승객들이 항의하는 일이 없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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