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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Report] '돈의 흐름' 다양하게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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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최근 두 달여 사이에 중국.일본.미국발 충격이 국제 금융시장을 연쇄적으로 강타했다. 이는 세계적 불균형의 조정과정에서 나타난 글로벌 유동성의 변화 조짐으로 볼 수 있다.

세계적 저금리 추세와 자산시장의 버블로 대표되는 지금의 글로벌 과잉 유동성(현금 등 유동성이 높은 자산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태)은 10년간 지속됐던 일본의 장기 침체와 초저금리, 아시아 지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 그리고 달러화 자산 운용 위주의 현 국제금융 트렌드에서 비롯됐다. 즉 세계화의 진전으로 실물거래가 크게 확대됐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시스템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 이것이 버블과 버블 붕괴 이후의 초저금리, 그리고 투자 부진을 초래해 과잉 유동성을 낳는 주요 원인이었다. 또 경상수지는 세계적 불균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역별 편중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금융자산 수급 불균형을 심각하게 확대시키고 있다. 이런 세계적 차원의 과잉 유동성이 곳곳에서 자산시장 버블을 초래했으며, 자본 역류를 통해 미국의 적자를 메우는 데도 활용됐다. 사실 미국 경제는 그동안 세계로부터의 자본 유입을 통해 적자를 지탱하면서 세계 경제를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서브 프라임 대출시장(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우대금리보다 높은 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것)이 악화되면서 본격적인 조정국면에 진입함으로써 이러한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과잉 유동성의 조정은 글로벌 차원의 흑자 요인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적자 요인인 미국을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 불균형의 원인을 제공하는 이들 국가의 조정 여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중국은 과잉 유동성과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금융정책수단이 마땅치 않다. 또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으로 환율 조정의 여력마저 제한돼 안정화 노력에 더 많은 재원이 소모될 전망이다. 안정 성장을 위한 속도 조절 과정에서 자칫 예기치 않은 충격과 파장이 세계적으로 파급될 수도 있어 필요한 만큼 조정되기도 어렵다. 일본 역시 최근 경기 회복세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엔저 기조가 약화될 경우 회복세가 지속될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버블 후유증을 이제 겨우 극복한 경기 회복 초기 단계에서 금리와 환율의 조정 여력은 여전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엔-캐리 포지션의 조기 청산(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해외 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게 엔 캐리인데, 그 상품을 파는 것이 엔 캐리 포지션의 청산) 가능성보다는 포지션의 확대로 초래되는 장기적 조정 부담의 누적이 더 우려된다.

미국도 2000년 초 버블 붕괴 이후의 저금리 정책으로 부동산이 호황을 누렸고, 이 때문에 적자 기반 성장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속성장을 위해 저축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터진 미국의 서브 프라임 사태는 기초여건의 뒷받침 없는 신용 흐름은 언제라도 급격하게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다시 말해 중국과 일본의 경우 과잉 유동성을 흡수할 만한 내수기반 확충이 쉽지 않고, 낙후된 금융시스템은 해외로의 일방적 위험 이전을 강요하고 있다. 금융 발달을 토대로 소비 흐름을 안정화시키면서 제조 기반을 해외로 이전한 미국의 적자 축소도 쉽지 않다.

글로벌 과잉 유동성이 조정 징후를 보이고 있는 건 부동산 버블이나 경상수지 적자 확대를 통한 기존 국제금융 체제상의 대응 여력이 소진됐음을 뜻한다. 따라서 향후의 조정은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환율과 금리의 변화 또는 아시아 지역의 내수 확대 및 미국의 저축 증가로 구현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불균형을 단기에 축소할 정도의 환율과 금리 조정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욱이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은 이런 조정 여력이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에 조정의 여파는 예상보다 클 수밖에 없다. 자금 흐름의 편중으로 위험 관리 부담과 분산 여력이 떨어져 있어 충격에 대한 대응 자체가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은행의 신용 공급에 의존하고 있는 자산 담보의 가치가 급락할 경우 실물경제의 성장은 크게 둔화되고 버블 붕괴의 후유증은 장기적으로 남을 것이다. 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이 선진국보다 낮은 신흥시장은 가계 부문 부실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금융이나 기업 부문에 비해 위험을 이전하거나 분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상되는 충격에 대비해 취약 부문을 관리하면서 충격 흡수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것도 비상계획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기본적으로 대외 불균형 확대에 의존한 성장전략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낙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과잉 유동성은 급격하게 축소될 수 있다. 이 경우 자산시장 조정에 따른 투자 손실과 자금 이탈이 가시화되면서 과잉 유동성에 익숙했던 신흥시장의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안정을 위한 강도 높은 조세 처방으로 인해 거래 위축에 따른 유동성 저하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충격에 대한 반응은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세계적 불균형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가시화되기 때문에 엔저 소멸에 따른 반사적 수출 증가의 혜택은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위험의 대비 차원에서 유동성 수준의 관리, 즉 현금 흐름의 확보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금리와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수반한 조정과정을 회피하려면 금융의 적극적인 역할을 토대로 경상수지 흑자 국가는 내수를 진작하고 적자 국가는 저축 증가를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기 안정에 주력할 경우 조정 부담이 누적돼 급격한 충격이 초래되므로 체제적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자산시장의 조정이 본격화하기 이전에 경상수지 흑자 국가를 중심으로 비교역재 부문의 생산성 제고를 위한 투자를 우선적으로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 버블화를 초래하지 않는 투자 기회의 발굴을 통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향후 조정 부담을 이겨낼 수 있는 현금 흐름이 확보된다.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다변화된 국내 신용의 공급이 관건이다. 결론적으로 현 시점에서 필요한 세계적 차원의 조정은 가격 변수나 유동성에 영향을 주는 직접적 청산보다 새로운 투자 기회 창출과 파생거래를 이용한 간접적인 위험 관리가 바람직하다. 특히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은 금융 부문에서의 급격한 유동성 변화로 초래되는 실물경제의 부작용을 감안해 신용 흐름의 안정화에 역점을 두는 위험 관리 노력이 절실하다. 또 자산 포지션의 변화로 초래되는 자금 흐름의 역류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헤징 전략을 강화하고,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거래의 활성화를 통해 충분한 시장 유동성을 유지하면서 낙후된 내수 부문의 성장 탄력 제고를 우선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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