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가요상 "팬들 인기곡과는 먼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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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해의 대중음악을 결산하는 연말 각종 가요시상제도가 우리 가요의 주류를 반영하지 못한채 소수 스타 위주의 지나치게 편협한 관행으로 치러지고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권위있는 대중음악상이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아래서 이들 연말 시상제도가 음악작품 자체나 가요의 전반적 흐름과는 거리가 먼 일부 가수들에게만 집중, 대다수 음악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상이 작곡·작사·편곡·연주·연출·녹음등 전문적인 음악생산 부문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인색한 반면 상업적 효과만을 노리는 몇몇 가수들에게 7대·10대·l5대등 복수로 몽뚱그린 상을 수여하고 있어 가요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매년 음악의 질과 양이 크게 변함에도 불구하고 한해의 인기가수 숫자를 7,8,15등으로 고정시켜놓는 관행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가요계의 기형적 시상제도로 꼽힌다.
또 다양한 음악 애호계층과 취향을 반영할 수 있도록 장르별·부문별로 음악의 질을 분석한 상이 전무한 형편이어서 상당수의 가수·음악인들이 벌써부터 연말 가요상들을 외면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같은 실정은 가요상들이 명확하고 합리적인 근거, 전문가적인 분석에 의존한다기보다 인기 위주로 흐르면서 극성 팬들의 일반투표와 주최자의 이기주의적 자의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김현식(작고)·이승환등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계열의 가수·음악인들은 그들의 인기에도 불구, 매년 연말 가요상의 시상대상에서 제외된채 겉도는등 시상제도가 일관성조차 잃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한 가요상에선 올해음악의 질로 보아 크게 내세울만한 히트곡도 없고 음반판매량 등에서도 크게 뒤떨어진 태진아가 최고 인기상을 수상하는등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지난해 모 방송사의 가요시상에선 거의 활동이 없었던 최진희·설운도가 10대가수에 전격 포함되는 바람에 다른 인기가수들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신승훈·심신·신해철·윤상·이범학·박정수등 이른바 신진그룹의 음악들이 기성 가수들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견가수 위주의 시상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연말 가요시상제의 큰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적어도 형식적으론 여러단계의 심사절차를 갖추고 있다고는 하나 심사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연말만 되면 가수·매니저들이 강력한 로비활동을 벌이는 현실도 가요상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90년초 가요계를 강타했던 방송 PD수뢰사건에서도 이 연말 가요대상들이 주된 수사대상이 될 정도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중견급 싱어송 라이터는 이에 대해 『진정한 가요의 기념비가 되고 좋은 대중음악들을 발전적으로 이끌어 갈 시상제도가 없다』며 『연말의 화려한 상들이 가요를 활성화시키는 기폭제가 된다기보다 가요계의 타성과 음악인들의 위화감만을 확인하게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연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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