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의 반한' 대선판도 요동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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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 탈당 카드'로 12월 대선 구도를 뒤흔들었다. 그의 탈당은 '당내 3위 후보'의 중도 포기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대선 정국이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당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양자 대결로 치러질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흥행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두 사람 모두 보수 색채가 진한 데다 영남 출신이기에 이념.지역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하던 범여권 내 통합신당 추진 세력은 변화를 모색할 새 동력이 생겼다.

◆드라마 꿈꾸는 손학규=한나라당 내에선 그의 탈당을 놓고 '죽는 길을 택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전격적으로 탈당을 결행했다. 도대체 그의 계산은 뭘까.

그는 19일 한나라당을 부패와 독재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묘사했다. 열린우리당을 '무능한 진보'라고 규정했다. 손 전 지사의 핵심 관계자는 "그가 말하는 새 정치 질서는 중도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라며 "그가 새로운 정치실험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손 전 지사가 실패한 진보의 지도자가 되려 한다"고 전했다.

손 전 지사가 중도의 지점에서 꿈꾸는 것은 드라마다.

반전 드라마는 범여권이 노리는 카드다. 한나라당에서 지지율이 뜨지 않는 손 전 지사가 당 밖에서 범여권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려 하는 것이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운찬 서울대 총장과 진대제 전 열린우리당 경기지사 후보를 언급하며 '드림팀'을 만들자고 했다. 그는 이들과 힘을 모아 세력을 키우고 결국엔 그들과 경합해 지지도를 높여나갈 태세다.

손 전 지사는 이미 반(反)한나라당, 비(非)노무현을 표방한 신당 창당 모임 '전진 코리아'라는 정치세력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한나라당 내 일부 동조 세력과 황석영씨 등 진보 성향 인사들로 세 규합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존 정치세력과 차별되는 '제3의 정치세력' 만들기가 가능할 것으로 그는 보는 것 같다.

손 전 지사가 이날 "전진 코리아는 기존 386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극복할 수 있는 적극적 사회참여 세력"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전진 코리아 측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정치권에선 손 전 지사와 정 전 총장이 한 배를 타기보다 각각의 세력을 바탕으로 각개약진하다 기존의 주자들과 함께 범여권의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벌일 것이란 관측이 높다. 정 전 총장은 그러나 "(손 전 지사가) 왜 날 거론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변화의 동력 생겼다"=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밀려 운신의 폭이 좁았던 여권 각 정파들은 그의 탈당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12월 대선이 수구세력과 평화개혁세력 간 대결 구도가 가능해졌다고 환영했다. "지지멸렬하던 여권에 변화의 동력이 생겼다"는 얘기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은 "손 전 지사가 여권 발 정계개편을 주도하게 되면 큰 소용돌이가 일 것"이라며 "제2의 이인제가 아니라 새 정치질서를 창조하는 돌파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동영 전 의장 등 여권 내 대선 후보들도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에 대한 경계심도 일부 보였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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