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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기법안은 재심이 마땅/이수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 국회의 쟁점법안 무더기 날치기처리와 비슷한 시기에 이웃 일본에서도 집권자민당이 말썽많은 이른바 자위대파병법안을 중의원특위에서 강행 처리했다.
민자당수뇌들은 이 소식에 『우리만 그런게 아니지 않느냐』며 마치 원군을 얻었다는 듯 화제로 삼았다. 염치와 분수를 몰라도 그렇게 모를 수 있느냐는 안쓰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기어코 또 일본에서는 민자당기대와는 다른 반전극이 발생했다.
자민당이 국민들의 비판과 야당측의 강한 반발에 따라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특위에 재송해 다시 심의토록 한 것이다.
같은 방식을 따른다면 떫긴 하겠지만 민자당으로서도 다시 날치기 쟁점법안의 상임위 재심사를 해야할 입장에 몰린 셈이다.
민자당측이 겸연쩍겠지만 이 정도로만 나온다면 일본을 들먹인다고 해서 민족적 자존에 상처받았다고 탓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쟁점법안의 상임위재송은 날치기통과를 자인하는 꼴』이라는 구습의 경직성에만 계속 매달린다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할게 틀림없다.
우선 정부·여당이 아무리 선의와 최선이라는 확신을 갖고 추진 또는 시행할 법안내용이라 한들 국민들은 계속 의혹을 가질 것이라는 점이 첫째 이유다. 정부·여당이 재심사를 통해 일부 국민과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점을 담당하게 반박·설명해 적극설득하는 자세를 갖는게 집권측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둘째,의회주의는 절차가 생명이라는 점이다. 의회주의적 절차와 방법에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게 정도다.
누가 봐도 날치기통과는 절차상에 문제가 있었고 상당수 국민들과 야당은 내용에 오해를 가졌든,아니든간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오해도 씻고,의회주의의 값진 전통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정부·여당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며 날치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꼴만 된다.
『인내와 설득으로 무리수를 두지않겠다』는 신임여당총무의 말에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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