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대소정책 향배/「우크라이나 승인」 일단 유보(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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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르비·옐친의 불만을 우려/“독립 기정사실”… 공화국과 직접 거래
미국은 소연방으로부터 독립을 결정한 우크라이나공화국에 대한 즉각적인 국가승인과 외교관계개설은 유보했으나 적절한 절차를 거친 후 독립국가로 인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국민투표가 실시되기전 이미 독립승인 방침을 밝힌 바 있어,미국의 우크라이나 독립승인 입장은 이미 확고했으나 몇가지 이유로 즉각적인 승인은 유보했다.
미국의 우려는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불안을 중화시켜 보려는 목적이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국민투표 실시전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승인할 의사를 밝혔을때 『소연방으로부터 우크라이나가 분리되는 것은 소연방과 우크라이나 자신 뿐 아니라 유럽과 세계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옐친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려면 러시아와 국경문제등을 먼저 매듭지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이러한 불만때문에 우크라이나와 소연방·러시아간의 조정이 끝날때까지 승인을 유보하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필요했다.
우크라이나에는 현재 1백76개의 다탄두 미사일과 약 1천개의 핵탄두가 배치되어있는데 독립으로 말미암아 소속·통제가 모호해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소연방이나 러시아로 넘겨주기를 거부하고 있고,옐친 대통령은 이를 러시아로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소연방과 독립협상을 벌이면서 핵무기를 카드로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판단과 함께,그 와중에서 핵탄두나 미사일 또는 핵기술이 제3세계로 흘러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말린 피츠워터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인권등 민주원칙 존중 ▲핵확산금지 등 기존 무기감축협정의 준수 ▲소연방정부와 경제협력 등을 내건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부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독립문제를 놓고 고르바초프·옐친 양대통령과 상의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피츠워터 대변인은 밝히고있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은 우크라이나 독립을 계기로 소연방에 대한 정책을 바꾸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지난 8월 소련 쿠데타가 끝난 직후만해도 각 공화국들이 연방정부아래 결속하기를 희망했던 미국은 공화국들의 독립요구를 기정사실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피츠워터 대변인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그같은 변화는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미 약화될대로 약화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연방정부를 상대하기보다는 개별공화국과 직접 거래를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독립승인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연방정부를 택하지않고 우크라이나를 택했다.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자신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문하여 우크라이나 지도자들과 핵무기 처리,소연방과의 경제협력문제를 직접 매듭지은 후 독립을 승인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미국이 지금까지 인정해왔던 소연방정부의 외교권이 개별공화국으로 넘어갔음을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미국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소연방에 대한 통제력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며,우크라이나와 같은 독립요구가 다른 공화국에서도 나올 경우 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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