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난민촌 … 네팔 빈민학교 … '나눔여행' 떠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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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배낭여행자들이 1월 태국 푸껫 인근의 한 보육원을 찾아 가져간 헌 옷가지를 현지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좋은 생각 제공]

회사원 임효진(32)씨는 지난달 초 휴가를 내고 태국으로 떠났다. 이미 몇 차례 동남아 배낭여행 경험이 있는 임씨가 여행 목적지로 삼은 곳은 태국과 미얀마 국경 사이의 외딴 난민촌. 군사정권 하의 미얀마에서 탈출한 '카렌족'이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방인의 출현에 경계하던 주민들 앞에 그는 '선물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국내 배낭여행 모임 회원들이 한 달간 수집한 헌 옷과 신발 1000여 점이었다. 임씨와 한국인 여행자 4명은 현지 학교와 유치원에 찾아가 학용품도 나눠줬다. 아이들과 종이 접기, 그림 그리기를 함께 하며 그곳에 사흘간 머물렀다. 임씨는 "난생 처음 크레파스를 받고 기뻐하던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잊을 수 없다"며 "휴양지에서 맴도는 것보다 훨씬 값진 휴가였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와 해외여행을 결합한 '나눔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패키지 여행→배낭 여행→맞춤형 여행'으로 발전해온 여행 트렌드의 새 모습이다.

◆'나눔 배달부'되는 여행=임씨의 여행을 주선한 곳은 동남아 배낭여행족 모임 '좋은생각'. 이 단체는 2004년 6월부터 태국.라오스.캄보디아 난민촌과 보육원에 모두 3만여 벌의 헌 옷과 2000만원어치의 학용품 등을 전달해 왔다. 평소 헌 옷과 성금을 모아뒀다가 현지로 떠나는 회원이 나서면 '배달'을 맡기는 방식이다. 회원들은 서너 번 이상 동남아에 다녀온 '여행 매니어들'.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인의 어려운 사정을 본 사람들이 동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좋은 생각' 모임지기 이민구(39.요리사)씨는 "종종 공항에서 보따리 장사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행복을 배달한다는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요즘엔 인터넷 공지를 보고 해당 지역에 머물던 배낭여행자들이 목적지까지 동행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스폰서 투어 여행'=한국기아대책.굿네이버스.월드비전 등 해외 원조단체들이 기부금을 쓰는 현장으로 회원들을 안내하는 '스폰서 투어'도 새롭게 떠오른다. 회원은 소속 단체의 활동상을 목격하고 봉사 활동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갖는다. 물론 경비는 회원들 몫이다.

2003년부터 한국기아대책에 월 2만원의 후원금을 내온 박승희(43.여.의사)씨는 지난해 여름 휴가를 세 자녀와 함께 네팔에서 보냈다. 박씨의 후원금으로 학교에 다니는 아마르 쉐레스타(14)가 사는 곳이다. 그는 열흘간 그곳에 머물며 한국기아대책이 후원하는 아동 1200여 명의 건강검진을 해주기도 했다. 박씨는 "지켜보던 아마르가 '커서 의사가 되겠다'고 해 한참 웃었다"며 "나 자신과 아들.딸 모두에게 값진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스폰서 여행을 다녀온 회원들은 대부분 봉사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공무원 송지영(30.여)씨는 지난해 8월 굿네이버스가 기숙학교를 운영하는 네팔 상글라 지역을 방문했다. 송씨는 매달 3만원 내던 후원금을 월급의 1% 수준으로 늘렸다. 박승희씨가 후원하는 아동도 올해부터는 네 명으로 늘었다.

박동일 굿네이버스 홍보팀장은 "회원들에게 워낙 인기가 높아 출발 3~4개월 전에 공지하는데도 곧바로 참가신청이 마감된다"며 "1년 전부터 '미리 예약해 달라'는 극성 회원도 있다"고 전했다.

◆대학생은 '워크 캠프'=정다혜(23.여.홍익대 4년)씨는 1월 인도 쿤다투르의 한 어촌에서 열린 워크캠프에 참가했다. 멸종 위기의 바다거북을 보호하는 취지의 캠프였다. 정씨는 "생각보다 고된 일정이었지만 외국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던 캠프가 아직도 그립다"고 말했다.

워크캠프는 각국 청년 10~20명이 특정 지역에 2~3주간 함께 머물며 봉사활동을 하는 캠프다. 해마다 70여 개국에서 4000여 개의 워크캠프가 열린다. 환경.교육.문화.농업.빈곤 퇴치 등 주제도 다양하다. 근로를 통해 돈을 버는 워킹홀리데이와 달리 항공료와 체재비 모두 자신이 부담한다. 이재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청소년팀장은 "지난해에만 각종 단체의 주선으로 모두 20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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