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책임한 한·미 FTA 협상 중단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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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막바지 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협상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비준을 거부하자는 몰상식한 주장을 펴는가 하면, 심지어 협상을 중단하고 다음 정권에 넘기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국회의원 38명은 16일 현재 정부가 벌이고 있는 한.미 FTA 협상이 '국익을 훼손하는 졸속 협상'이라며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은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결의를 대선 행보의 첫걸음으로 삼았다. 그는 "한덕수 총리 후보가 한.미 FTA에 적극적 입장을 유지하면 인준을 반대하겠다"며 "다음 정부에 체결과 비준 동의를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정동영 전 의장 역시 "협상이 불평등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시한 내에 마무리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과거 집권여당의 의장이 한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딱하고 한심하다.

우리는 한.미 FTA 협상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협상의 타결을 '국익 훼손'으로 단정 짓는지부터 다시 따져보고 그 이유를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해명하기 바란다. 반대를 하더라도 막연히 '불평등한 협상'이라거나 '졸속 협상'이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 협상의 실상을 제대로 진지하게 파악한 뒤 구체적 득실을 비교해 반대 논리를 펴라는 것이다. 우선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FTA를 통해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나라만 문을 닫아 걸고 무슨 수로 살아갈 것인지부터 답해야 한다. '밀실 협상'이나 '졸속 협상'이란 주장은 협상 절차에 대한 무지와 그간의 진행 경과에 대한 무관심만을 드러낼 뿐이다. 협상 시한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지, 과연 다음 정부에 넘겨도 협상을 계속할 수는 있는지, 만일 그렇게 했다가 한.미 FTA가 영영 물 건너가면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지도 찬찬히 알아보고 '협상 중단'을 입에 올리기 바란다.

섣부른 진단과 목소리 큰 개방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앞세워 한.미 FTA 반대에 나서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정략적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