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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 선택 새 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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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무엇보다 중요한 대원칙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존재 이유와 국가 목표는 구성원들인 국민의 평화로운 삶이 대전제요,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점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국민 개개인이 '함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사회가 존재하고 국가가 구성되는 것이다. 만약 국가가 이러한 목표에 역행하거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면 국가로서의 존재가치가 심각하게 도전받는다. 역사적으로 반복해 경험했던 국가적 혼란이나 혁명의 근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이 평화롭게 잘 사는 문제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자유와 사회적.분배적 정의로서의 평등이 보장돼야 한다.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이념적 좌표로 삼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야말로 사람으로서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세계사적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의 경우에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독재정권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이 자유를 위해, 그리고 자유를 전제로 하고 자유를 보장해 주는 민주적 정치질서를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 점은 언제 생각해도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는 현대사의 한 대목이다. 러시아 작가 두진체프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표현이나, 18세기 말 미국의 독립전쟁을 이끈 패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명연설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음으로 분배적 평등의 문제는 자유와 다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극단적.방임적 자유주의의 폐단으로 발생하는 부의 편재 현상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현대국가에서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위한 국가의 개입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즉 분배의 부정의로 인한 사회의 극단적 갈등은 구성원들의 평화로운 삶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계층 간 극한적 대립으로 악화되면 어떤 경우에도 유지돼야 할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그 전제를 이루고 있는 자유와 사회적 정의가 잘 조화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주어진 여건과 능력에 차이가 있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활동의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다른 결과를 강제로 줄이거나 없애려 하게 되면 자유의 위축이나 억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이 둘을 어떻게 슬기롭게 조화시키느냐가 나라마다 어려운 핵심 과제가 돼 왔다. 그러한 상황은 우리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 정부 들어 지난 4년 내내 이 문제가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 급등과 그에 따른 규제 및 '세금폭탄'의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생생한 사례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은 전체로서의 경쟁력을 생각하는 한 고른 분배를 위해 결코 자유를 포기할 수 없고, 개인의 극단적 자유를 위해 사회적 정의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조화점이 될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계속되는 논의에서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새로 선출될 대통령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대선에 매달리고 있지만 지난 몇 차례의 경험에 비춰 보면 실망이 더 컸었다. 우리가 함께 잘 살려면 적어도 이번 대선에서는 감정과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이런 문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그에 따른 현명한 판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김형성 성균관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