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할머니 소송 도일/회생자 35명 법정투쟁 위해 5일 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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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 정부 “보상 종결” 딴전/현지신문과 기자회견·가두행진등 계획/일인사이서도 반성운동… 재판결과 주목
일제에 의해 학도병·정신대·군속·노무자등으로 강제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고 지하갱도와 정글속에서 숨져갔던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모임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회장 김종대·54) 회원 35명이 태평양전쟁발발(12월7일) 50주년을 맞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기위해 5일 도일한다.
열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정신대로 남양군도에 끌려갔던 박말자 할머니(69),일본군함 위에서 폭격을 받아 한쪽팔이 잘려나간 김영환 할아버지(70),아버지가 남양군도 브라운섬에서 학살당한 한문수씨(49) 등 일본으로 가는 35명 모두의 가슴속에는 수십년의 세월도 치유하지 못한 한이 아직 서려있다.
이들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지 50년 되는 7일 일본 동경지방재판소에 2백만명의 한국인희생자를 대표해서 우선 1인당 2천만원씩의 피해보상소송을 낼 계획이다.
『돈 몇푼 얻어내자는게 아닙니다. 자신들의 죄악을 깡그리 묻어버린채 원폭의 피해자라는 사실만을 앞세우는 뻔뻔스런 일본 정부를 향해 노예처럼 끌려가 시들고 숨져간 한국인과 그 유가족들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은 겁니다.』
일생을 수모와 부끄러움 속에서 죄인이 되어 숨어살아야 했던 「정신대 할머니」가 수십년을 가슴에 담아뒀다 이제서야 토해내는 「절규」다.
이들은 소송을 낸뒤 일본신문들과의 기자회견을 통해 「진정한 피해자가 누구였나」를 밝히고 동경 히비야공원에서 국회까지 30여분간 가두행진도 벌일 예정이다.
최근 일본내에서도 양심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과거를 솔직히 반성하자」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고 도일한 35명의 소송도 하야시변호사등 일본인·재일교포 변호사 7명이 변호인단을 구성해 무료변론을 맡고 있어 이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어 재판결과가 주목거리.
64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한국정부와 합의한대로 70년대초까지 피해자 8천여명에 대해 1인당 30만원씩의 보상금을 이미 지급했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주장이다.
『사망자 유가족이나 불구가 된 희생자들에게 몇십만원을 주고 보상을 끝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이하이기 때문에 끝까지 갈 경우 소송에서 승리할 것으로 봅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이 교전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일본인들을 미국내에 억류한 사실을 문제삼아 엄청난 배상과 사과를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교가 안될만큼 당해야 했던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모른체 합니다. 바로 일본의 두얼굴이죠.』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 이사의 말이다.
정신대원 박할머니등 35명의 소송이 승리할 경우 비슷한 희생자들인 수십만명의 피해자들이 잇따라 소송을 낼 전망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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