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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0. '나, 김수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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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97년 연극 '나, 김수임'에서 윤석화씨가 김수임 역을 맡았다. 내가 제작한 의상을 입은 윤씨.

1990년대 들어 연극계가 침체기에서 벗어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작고한 강유정씨가 기획.감독한 뮤지컬 '매스터 칼라스'의 의상을 내가 맡았다. 새롭고 세련된 무대 장치에다 윤석화씨의 열연과 열창이 작품을 한층 빛내 이 뮤지컬은 크게 히트했다. 공연이 끝난 뒤 나는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다. 강유정씨와는 한국전쟁 때 환도 후 극단 신협의 일을 하면서 인연을 맺어 긴 세월 친분을 유지해 왔다. 그는 여인극장 대표로 일생을 연극을 위해 살았다. 그의 연극에 대한 열정과 끈기 그리고 용기를 나는 높이 평가한다.

'매스터 칼라스'공연이 끝나자 곧이어 연극 '나, 김수임'의 의상 의뢰가 들어왔다. 나는 '진짜' 김수임씨의 사진을 한 장 갖고 있다. 광복 직후 우리 집에서 열렸던 파티 때 찍은 것인데 별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눈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상냥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여인이었다. 우리 집에서 파티가 열리면 나는 늘 음식을 나르는 일을 맡았다. 아무도 내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하루는 김수임씨가 너무 수고한다며 나를 점심에 초대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당시 반도호텔에서 연회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당시 우리나라 최고급 식당이던 반도호텔 레스토랑에서 멋진 점심 식사를 했다. 뒷날 김수임씨가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한국전쟁 후 그녀가 사형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의 명랑한 웃음소리와 정다운 목소리가 오랜 세월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97년 '나, 김수임' 공연 때 그녀의 아들이 연극을 보러 미국에서 귀국했다. 광복 후 주한 미 헌병사령관을 지낸 베이드 대령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김수임씨의 아들은 일찍이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에서 목사 생활을 하며 결혼, 가정을 꾸몄다. 그는 한국에서 어머니를 아는 사람을 찾기 위해 모 신문사의 소개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집에서 간단한 점심을 차려 놓고 그를 맞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큰절을 하겠다고 바닥에 엎드렸다. 순수하고 밝은 그의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양부모가 정성과 애정으로 키웠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며 어머니와의 인연, 그리고 어머니의 인품 등을 자세히 얘기해 줬다. 그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는 오랜 세월 아버지 소식을 수소문하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고 했다. 미국 남부 지방 어느 양로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끝내 자신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면회조차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고 면담을 단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아버지'하고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했다며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인생에서 비극이란 끝이 없는 것 같다. 지금도 나는 그 젊은 목사의 얼굴에 담겨 있던, 마음 깊은 곳에 무거운 돌이라도 안고 있는 듯한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노라·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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