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6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캐릭터 분장사 윤경남 씨
17일 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허름한 철거민 마을. 바로 옆에 우뚝 선 고층아파트의 현대적 모습과 철거민 마을의 대조가 더욱 엄청난 시간의 흐름을 절감케 하는 가운데 TV 미니시리즈 『두 여자』의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연출자의 고함소리가 커지면서 NG가 날 때마다 대기하고 있던 프리랜서 캐릭터 분장사 윤경남씨(30)는 파운데이션과 스펀지를 양손에 들고 곧장 배우들에게 달려가 헝클어진 분장을 재빨리 능숙한 솜씨로 매만져준다.
윤씨가 남자들도 견뎌내기 힘들다는, 천의 얼굴을 창조해내는 마술사 방송 캐릭터 분장사를 직업으로 갖게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가 계기가 되었다.
미술대학에 가고 싶어했던 윤씨는 집안형편이 여의치 못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미술대학에 다니는 선배언니의 그림지도를 받고있었다. 83년 서강대 교내연극극단인 서강극단의 맥베스 공연에서 분장을 맡게된 선배의 권유로 분장보조를 하게된 것.
이때부터 윤씨는 대학연극무대에서 무보수 분장사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2년 후인 85년부터는 일반극단의 프리랜서 분장사가 되었다.
이듬해 윤씨는 분장을 제대로 배우려면 방송국 만한 곳이 없다고 판단, MBC에 방송분장연수생으로 들어가 6개월 동안 방송분장교육을 받았다.
채용을 전제로 한 방송분장교육 후 윤씨는 탈락이란 큰 좌절을 만난다.
그러나 윤씨는 연극무대와 방송국 일을 통해 알게 된 분장사계 선배들의 소개로 일감을 맡으면서 프리랜서 분장사로 홀로 서기에 나서게 된다.
윤씨는 『분장일 외에 섭외도 직접 해야하고 미용·소품·의상도 함께 신경써야하는 고충이 있다』고 프리랜서 분장사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분장사라는 직업은 순간 순간 연출자가 요구하는 것을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11월초에는 촬영작업도중에 연출자가 생후 이틀 된 아기를 데리고 와서는 애기 낳는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분장을 주문하여 아이를 낳아본 경험도 없는 윤씨를 당황케 했다. 그는 곧 출산경험이 있는 여배우에게 물어 산모의 양수 대용으로 아기에게 해롭지 않은 달걀 흰자위를 생각해내 태아를 분장시킨 일도 있다고 임기응변의 실례를 든다.
윤씨는 자신이 느끼는 분장사의 매력에 대해 『지난해 6·25특집극 「당신의 노래」촬영을 갔을 때 분장사이기 때문에 촬영현장인 탄광 갱내에 이틀씩 들어갈 수 있었다』며 『작품마다 새로운 상황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긴장감』이라고 말한다.
11월초 MBC 방송문화원에서 분장학과 연수생 30명을 뽑는데 2천명이 몰릴 만큼 요즘은 분장사가 전문직으로 인기 높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분장사를 화려한 직업으로 알고있으나 촬영 때에 며칠 밤을 새는 등으로 그 일이 좋아 미치지(?)않으면 힘들다고 말한다. 충분한 기능만 갖춘다면 일감은 많다. 그는 분장사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려면, 각종 공연물이나 촬영작품이 계획성 있는 사전조사·연구에 의해 제작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
내후년께 특수입체분장 기법을 배우기 위해 해외유학을 계획중인 윤씨는 21일 새벽에 인간의 감정까지 묘사할 수 있는 분장을 갈망하며 촬영현장인 청평호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고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