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진정에 구조개선 따라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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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때 과열을 걱정했던 경기가 3·4분기부터 진정국면으로 돌아섰다는 징후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분기의 경제동향만을 보고 그것이 일시적인 기복현상에 불과한 것인지,아니면 중기 내지 장기추세의 시발인지를 정확하게 가려내기는 어렵지만 일단 경기변동의 전환점이 나타나면 그 변화가 파생시킬 역기능을 줄이고 긍정적 파급효과를 최대한으로 확대시키려는 노력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3·4분기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이 기간에 산업생산과 출하,그리고 투자의 증가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앞으로의 경기동향을 예고하는 9월의 경기선행지수도 지난 4월이후 처음으로 감소추세를 기록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분기별 산업생산 증가율이 대체로 8%이상의 수준을 유지했던데 비추어 금년 3·4분기에 그것이 6%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경기의 찬바람을 느끼게 하는 변화들은 이밖에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기업실태 조사에서도 기업의 매출과 투자가 3·4분기에 한풀 꺾였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늘어나는 중소기업 휴폐업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경제가 겪어온 불균형과 불안정이 힘에 넘치는 성장과 직결돼 있었던 만큼 얼마간의 경기진정은 바람직스러운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과도한 수입증가세와 물가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폭의 성장둔화를 감내할 수 밖에 없다. 고금리를 부추겼던 자금초과수요,심각해진 인력난과 가파른 임금상승에 대처하는데도 성장 감속은 일정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경기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경제구조와 산업구조에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의 여부는 우리의 중대한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3·4분기의 경제동향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내수용 소비재출하의 증가폭이 줄어든 것은 과소비의 퇴조를 알리는 신호로 좋게 평가할 수 있지만 수출용 출하의 증가세가 그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국내와 해외시장으로 나뉘는 출하구조가 더 나빠졌음을 뜻한다.
산업구조에 있어서도 온갖 부작용을 낳았던 건설경기 과열이 수그러든 것까지는 좋았으나 제조업의 생산과 투자활동이 동시에 활기를 잃게 된 것은 결코 바람직한 변화로 받아들일 수 없는 대목이다.
모처럼 나타난 경기의 진정은 정부의 안정화 시책이 일단 성공을 거둔 증거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 경제에 몹시 필요한 구조적 개선이 수반되지 않음으로써 정책의 성공에 대한 평가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열로 되돌아가거나 반대로 과냉으로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경기의 진정국면을 좀더 끌고가는 것이 좋다는데는 대체로 의견의 일치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정부는 불건전한 소비형의 서비스산업부문에 너무 많이 몰린 자원과 인력을 제조업 쪽으로 환류시키는데 있어 경기후퇴를 유용한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이의실현을 위한 정책수단을 과감하게 동원해 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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