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성의 빈곤 문제를 다시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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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놀랍고도 안타까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취업여성의 수는 10년 전에 비해 1억 명이나 늘어났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낮은 임금을 받는 직종에 몰려 있으며 법적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고도의 불안정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99년 전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뉴욕에서 노동권리 요구와 성차별 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데서 유래했다. ILO 보고서는 당시의 요구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는 듯하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이라 해서 별다르지 않다. 여성 총리가 탄생하고 신임 판사와 의대 입학생의 절반이 여성일 정도로 최근 들어 여성의 사회 진출은 눈부시다. 하지만 여성의 빈곤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사회 곳곳에 켜켜이 숨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빈곤 인구를 남녀별로 나눠보면 3분의 2는 여성이며, 특히 가난한 노년층의 절대다수(80%)는 여성이다. 가계를 책임지는 여성가장은 5명 중 1명꼴인데 반해 빈곤가구 중 여성가장의 비율은 절반 정도나 된다. 빈곤의 문제는 곧 여성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저소득과 빚.생활고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며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산과 양육, 가사노동의 부담을 떠안은 채 작업장에서 열심히 일하고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혜택을 받는 경우는 전체 여성가장의 30%에 그치고 있다. 직업훈련을 받으려 해도 생계비 지원이 월 40만원에 불과해 당장 생계대책이 없는 여성들의 경우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직업 훈련을 받는 동안이라도 보육 문제를 해결해 주는 등 맞춤형 대책이 절실하다.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산전.후 휴가 급여를 보장하는 일은 시급하다. 여성이 단지 성차별로 인해 사회안전망이나 취업 등에서 차별받거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