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치불만 허둥지둥 “무마”/아태순방 왜 연기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사실상 중간평가… “위기” 판단/외교결례 무릅쓴 인기만회 고육책/상원보선참패/다급해진 부시
나라의 안살림은 제쳐두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밖으로만 돌던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지방선거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미 동부 펜실베이니아주 상원보궐선거에서 부시의 측근참모인 디크 손버그 전법무장관이 5일 민주당의 해리스 워포드 후보에게 참패했다.
펜실베이니아주 헤인즈 상원의원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데 따른 이번 보궐선거에서 손버그법무장관이 출마의사를 밝힐 당시만 해도 손버그의 인기가 민주당의 워포드를 40% 포인트나 앞질렀다.
손버그는 투표 며칠전까지만해도 당선이 무난할 것으로 예측됐었는데 개표결과 무려 12%포인트 이상의 표차로 워포드에게 참패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는 1개주의 보궐선거에 불과했지만 미 대통령선거를 1년앞둔 시점이어서 내년도 선거를 전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행지표 역할을 했다.
특히 민주당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국내정치를 소홀히 해 실업이 계속 늘고 경제침체가 계속된다는 주장을 펴며 이번 선거를 부시에 대한 중간평가로 몰고갔다.
실제 두 후보의 선거운동 기간중에 이러한 국내문제가 선거의 핵심 이슈로 부각됐다.
민주당측에서는 부시의 실정으로 경제가 계속 어려워져 중산층은 소득이 떨어지고 많은 국민들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며 집중적으로 부시를 공격했다.
심지어 민주당의 중앙당에서는 부시가 외국으로만 돌고 국내정치에는 무관심함을 꼬집는 T셔츠까지 만들어 선전에 이용했다.
이 T셔츠의 문구는 부시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담과 유럽공동체(EC)회의를 위해 또다시 이탈리아 로마로 여행할 것이 아니라 미시시피주의 로마시로 달려가 11%의 실업현상을 보아야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국민적 불만이 불이 붙기 시작해 선거 하루전에는 손버그·워포드와 백중세를 보였다.
민주당이 이러한 상승기류를 탈 경우 아무리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해도 부시의 재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급해진 것은 부시를 위시한 공화당 수뇌부들이다.
이들은 개표가 시작되자 마자 일방적인 패배를 알아차리고 즉각 수습에 나섰다.
그 첫 조치가 부시의 아시아 순방을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한국을 비롯,아시아 방문상대국 정부와 방문일정을 이미 확정하고 발표만 남겨 놓고 있었다.
그러다 펜실베이니아주 선거결과를 본뒤 발표하자는 계산으로 이를 24시간 미뤘다.
부시 측은 예상대로 손버그가 승리하면 그대로 아시아 방문을 밀고 가고 신승할 경우 방문일정을 단축한다는 복안을 갖고 기다렸다.
그러나 참패가 초장에 확실시 되자 부시측은 상대국에 협의도 못하고 허겁지겁 아시아순방 연기를 발표한 것이다.
이같은 결정은 부시가 수누누 백악관비서실장의 건의를 받아즉각 이루어져 순방등 외교를 담당하는 스코크로프트안보보좌관도 뒤늦게야 알았을 정도였다.
백악관의 설명은 부시가 아시아순방기간중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회가 국내경제등과 관련한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걱정해 의회의 활동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15일이내에 사용돼야만 하는데 외국에 나가있으면 곤란하다는 이유다.
따라서 미 행정부는 금년도 의회가 마무리되는 것을 본뒤 내년 1월중에 아시아방문일정을 다시 조정해 보자는 여운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한국·일본등 상대국이 어떻게 나올지가 미지수다.
부시의 이번 순방은 특별한 현안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태평양국가로서 이 지역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과시코자 한 것이 큰 목적이었는데 이번 결정과정을 통해 관련국들이 미국에 대해 서운한 감정만 쌓이게 됐다.
내년 2월부터는 대통령 예비선거가 시작되어 내년 1월을 넘기면 영원히 무산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