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몸집 작을수록 '잠꾸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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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생물학계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는 수면이다. 잘 때 어떤 일이 뇌 속에서 일어나는지 지난 수십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명쾌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지날달 과학섹션 발행 25주년을 맞아 '과학의 근본적인 질문 25가지'를 제기한 미 뉴욕 타임스도 그중 하나로 '왜 잠을 자는가'를 꼽기도 했다.

"조류는 나뭇가지 위에서 웅크리고 자며, 고래는 물속에서 헤엄치며 한번에 두뇌 절반만 잠이 드는 식으로 수면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포유류와 조류.파충류는 전부 잠을 잔다." (수면과학의 권위자로 꼽히는 미 시카고대 앨런 레흐트샤펜 명예교수의 1998년 논문에서)

수면에 관한 비밀은 53년 잠을 자면서 눈을 빠르게 움직이는 수면단계인 급속안구운동(REM.Rapid Eye Movement)이 확인되면서 한꺼풀 벗겨졌다. REM 수면에서는 뇌가 그냥 쉬는 과정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활동적인 생리현상이 일어나며, REM과 비REM 수면에서 두뇌활동 패턴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하버드대 수면과학자인 앨런 홉슨 박사 등은 "REM 단계에서 기억과 배운 것을 정리하는 등 두뇌가 복습기능을 한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두 편 실렸다.

하지만 미 UCLA 제롬 시걸 박사 등은 반대 입장에 서 있다. 시걸 박사는 "REM수면을 방해하는 '모노아민 옥시다아제'를 먹은 사람들이 기억력에 변화가 없었다"고 말한다. 뇌의 일부분이 망가져 REM수면을 취할 수 없는 사람들도 기억력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리너구리는 REM수면을 하루 8시간이나 취하지만 REM수면을 2시간 취하는 인간에 비해 똑똑하지 않다는 점도 반대의 근거가 됐다.

REM단계에서 뇌 신경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히스타민 같은 화학물질과 관련된 신경세포는 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화학물질들은 뭉뚱그려 '모노아민'이라고 불리는데 시걸 박사는 "계속되는 모노아민 방출이 신경세포 수용체를 무디게 만들기 때문에 잠이라는 휴식을 통해 가다듬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몸 크기가 다른 동물들이 잠자는 시간이 다른 점이 왜 잠을 자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코끼리와 말은 하루 3시간을 자며, 개는 10시간, 사람은 8시간, 족제비는 15시간, 주머니쥐는 18시간 잔다. 즉 몸의 크기가 클수록 신진대사가 느려 조금 자도 세포 회복이 빠른 반면, 몸 크기가 작은 동물은 신진대사가 빨라 많이 잔다. 이를 토대로 신진대사 과정에서 나온 유해산소로 인한 세포 손상을 복구하기 위해 잠을 잔다는 설이 매우 유력하다. 하지만 이는 몸과 두뇌가 쉬는 비REM수면을 설명해줄 뿐 REM수면 단계를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REM수면이 어떤 형태로든 두뇌 발달에 일정 기능을 한다는 사실엔 모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신생아는 어른보다 REM수면 시간이 더 많으며, 동물들도 미숙아 상태로 태어난 동물들이 REM수면 시간이 더 길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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