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 심화(전환기 맞는 중소기업: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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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40만명 부족… 주부인력등으로 땜질/구로공단선 생산라인 20%가 낮잠
지방의 농공단지에 입주해 전자부품공장을 운영하는 H기업의 C사장(45)은 이달초 며칠을 고심한 끝에 서울행을 결심했다.
지난 3년간 애써 가꾼 공장을 남에게 팔아넘기기 위해서다.
지난 88년 대기업의 이사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본금 10억원 규모의 회사를 차린뒤 연간 매출액 40억원을 올렸으나 인력난때문에 M&A(기업의 매수·합병)전문회사에 기업매각을 의뢰했다.
안산시에서 금속제품을 생산,수출하고 있는 B기업 P회장(55)도 10년 넘게 꾸려온 공장시설을 제3국으로 이전하고 공장부지등의 매각을 전문회사에 맡겼다.
모든 종업원의 생일에 금반지를 선물하고 기숙사·당구장·디스코장등 사원복지향상에 남다른 신경을 썼으나 하나 둘씩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종업원들때문에 공장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종업원을 못구해 야단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약 8%를 점하는 구로공단만 하더라도 2백72개 입주업체의 인력이 한달에 5천∼6천명이나 부족해 생산라인의 20%가 가동을 못하고 있다. 이에 따른 생산차질액이 월평균 2백5억원에 달하고 있으며 올들어 9월말까지 수출도 36억6천4백만달러에 그쳐 당초 목표(46억1천만달러)의 80%를 밑돌고 있다.
구로공단 관계자는 최근 1년새 줄잡아 6천1백35명의 종업원들이 서비스업종 등으로 빠져나갔을 것으로 보고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올해 중소기업의 부족인력을 지난해의 32만명보다 훨씬 늘어난 40만명선으로 추산했다.
(주)한국데칼의 김두연 기획조정실장은 『주부인력·아르바이트생·해외인력 등을 채용,땜질식으로 생산을 이끌어가고 있는데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이같은 인력난을 극복하기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있지만 역부족이다.
텐트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영화인더스트리얼은 인력난 해소를 위해 필리핀에 진출,1백50명의 종업원을 두고있다.
이와 함께 과장·부장에게 하청공장을 운영토록해 납품받고 있다.
그러나 임금상승에 따른 가격경쟁력의 악화로 수출이 갈수록 힘들다는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모기장 모자 1개당 1달러25센트에 수출계약을 체결하려 했으나 중국이 75센트를 제시하는 바람에 수출오더를 빼앗겼다.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공고와 자매결연을 하고 장학금을 대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친구나 고향사람을 데려오는 종업원에게는 상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
완구 및 전자부품 수출업체인 (주)삼모(구로공단 제3단지내)의 원영수 총무과장은 『종업원이 새로 두명을 데려올 경우 1박2일의 휴가를 주고 한 사람을 데려오면 2만원을 주고 있다』며 『현재 이같은 방식으로 6명의 식구를 더 맞아들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은 인력난을 중소기업 스스로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2∼3년간의 급격한 임금상승으로 중소제조업체의 경쟁력이 떨어져 서비스업쪽으로 인력을 뺏기고 있으며 정부차원에서 군인력활용방안 등을 내놓고 있지만 부족인력규모에 비하면 감질나는 것이다.
중소기협중앙회 김정수 조사부장은 『86∼88년 엄청난 무역흑자가 났을때 내수과열에 따른 제조업의 인력난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부장은 또 『중소기업스스로 기술개발·생산성향상 등을 통해 인력난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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