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만큼 창업도 활발(전환기 맞는 중소기업: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올 1천65개 신설 작년비 15% 증가/대부분이 고임금 피한 기술집약형
중소기업계가 커다란 지각변동기를 맞고 있다. 작년까지는 3저호황때(86∼88년) 벌어놓았던 「양식」으로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올들어서는 더이상 지탱할 힘이 없는 기업들이 여기저기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기업이 부실화하면 어떻게든 구제해온 정부가 중소기업들의 위기는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소리도 높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전략으로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의 창업이 줄을 잇고 업계의 탈바꿈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중소기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현안들을 재조명하고 그들이 생존을 위해 나아가야할 길을 3회에 걸쳐 알아본다.<편집자주>
중소기업들의 부도가 잦고 경기가 안좋을때는 금융기관들이 먼저 움츠러든다. 돈을 떼일까봐 웬만큼 신용있는 기업이 아니고는 대출을 꺼리며,기존대출금도 만기가 되는대로 회수하려들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공단내 카스테레오 수출업체인 D사는 요즘 이같은 문제로 궁지에 몰려있다.
이 회사의 자금담당임원은 『담보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은행에 잡힌 상태에서 신규대출을 받을 길이 없다. 단자사들도 업황이 안좋다는 말을 듣고 기존신용대출금의 상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부진과 인건비상승,금융비용증대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기관들이 자금공급규모를 줄일 경우 쓰러지지 않을 중소기업이 몇개나 있겠느냐고 중소기업인들은 반문한다.
노성태 제일경제연구소장은 『기업들의 단기차입금 의존도가 60%인 여건에서는 금융기관이 「긴축」의 헛기침만 해도 자금사정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무구조가 나쁜 것이 변명이될 수는 없을 지라도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얘기다.
중소기업계는 여러가지 다른 요인들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통화증가율이라는 양적 규제에만 얽매이는 경직적인 통화정책과 그로 인한 고금리와 시중자금사정의 예측불가능성이 결정타를 먹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금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자금도 미리 잡아두려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고 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말했다.
어쨌든 중소기협 중앙회 집계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휴·폐업한 업체는 3백50개에 이르고 있다. 작년 같은기간의 3백38개보다 그다지 큰폭으로 늘어나진 않았으나 업계가 피부로 느끼는 「위기의식」은 작년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계의 도산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견해도 많다. 산업구조조정 과정이나 기업의 체질강화를 위해서는 언젠가는 맞아야할 「매」라는 시각이다.
박철 한국은행조사부 수석부부장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산업구조조정이 이미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문제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협중앙회의 한 간부도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도태되고 새로운 기업들이 그 자리를 메워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는 올들어 8개월간 창업투자회사의 지원을 받아 신설된 중소기업수가 1천65개에 이른다는 점이다. 작년 동기보다 1백40개(15%)나 증가한 것이다.
도산기업들이 대부분 노동의존형인 의류·섬유·신발업종이거나 기술자립도가 낮은 중소전자·전기업체들인 반면,창업회사들은 고임추세를 감안,최소한의 인원으로 무장된 기술집약형의 전자·금속·기계업종들이다.
약화된 경쟁력도 보강하기 나름이다. (주)우연이라는 부산의 한 신발(사이클용 가죽운동화) 업체는 과거 호황때 번 돈으로 기술 및 설비투자를 한 결과 요즘도 수출부진이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다.
한편 최근의 상황을 실제보다 나쁜 쪽으로 증폭시키는데 일조한 상장사부도도 내용을 뜯어보면 별게 아니다.
의류업체인 기온물산 및 케니상사의 경우는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켜 공개했다. 증권당국이 심사를 제대로만 했다면 상장조차 될 수 없었던 것이다. 88∼89년중 무리한 공개촉진정책에 편승,자격도 없는 부실업체들이 무더기로 상장된 후유증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심상복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