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방범대 "우범동네"오명 씻었다|서울 정릉 문바위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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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본드흡입·좀도둑질·여고생성폭행 등 각종 청소년범죄에 시달리던 달동네가 할아버지들이 자율방범대를 조직, 주택가 순찰을 4년째 돌며 범죄예방활동에 나서 2년 연속 「범죄 없는 모범마을」이 됐다.
24일 오후9시쯤 서울정릉4동산16 해발1백50여m의 문바위마을 주택가.
「자율방범」이라고 쓰인 파란색 모자·안장을 찬 채 방범용 곤봉·손전등으로 「무장」한 김용성 방범대장(68)등 노인7명이 동네 골목길을 따라 야간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들 중 3명은 정릉야산의 산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택가 문단속에 나섰고 나머지는 불량청소년들이 탈선하기 쉬운 야산주위를 돌며 연방 손전등을 비춰댔다.
한시간 뒤인 10시쯤 이들은 간이정류소에 모여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친 뒤 마을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여중생 천인실양(14)등 여학생 3명을 정류소에서 5백여m 떨어진 산기슭 아래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잠시 후 두 조로 나둬 동네를 한바퀴 더 돌고 자정쯤 노인정으로 돌아와 경비일지를 기록한 뒤 모두 귀가했다. 경비일지 내용은 「이상 무」.
문바위마을에 할아버지 자율방범대가 생긴 것은 88년3월30일.
대낮에는 야산의 능선과 주택이 잘 어우러진, 소박한 산농네지만 밤만 되면 정릉국교주변 야산과 어린이놀이터 등에는 불량청소년들이 들끓었다.
본드를 흡입하고 심지어 환각상태에서 지나가던 여학생을 납치, 성폭행하는 등 사건·사고가 잇따르자 마을 노인회장 김병갑씨(69)등이 발벗고 나서게 됐던 것이다.
문바위마을은 67년 양동과 청계천의 철거민들의 집단이주로 형성된 전형적인 달동네.
3천여가구 1만여주민 대부분이 공사판·식당 등에 맞벌이를 나가 청소년들이 인근야산에 놀러온 폭력배들과 어울려 탈선행각을 벌이기 일쑤였다.
더구나 인근 정릉국교 주위에는 귀가하는 국민학생을 산으로 끌고 가 금품을 빼앗는 불량배들도 득실거렸다.
문바위 할아버지 방범대는 우선 밤에 혼자 다니기엔 으스스한 골목길에 방범등 6개를 달았다. 그리고 매일3∼4명씩 두 조로 나눠 골목길과 산기슭을 누비며 오후9시부터 자정까지 순찰활동을 벌였다.
방범대가 조직되기 전 이 마을의 청소년범죄 발생건수는 연평균 1백여건. 그러나 88년에는 87건에 그쳤고 89, 90년에는 단 한 건의 범죄도 발생하지 않아 2년 연속 서울시·서울지검으로부터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됐다.
한편 방범대는 올 여름방학동안 정릉국교 4, 5, 6학년생 50여명을 대상으로 노인정에서 서예교실을 열어 서예·예절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할 일 없는 노인들의 작은 희생이 범죄투성이이던 마을을 인정이 넘쳐흐르는 마을로 자리잡게 했다는 점에서 보람과 긍지를 느낍니다.』
동네에서 「맥가이버 노인」으로 통하는 방범대장 김씨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하루 4km이상 걷다보니 몸도 마음도 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형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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