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불량 … 400억 KF-16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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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서해 앞바다에서 발생한 KF-16(사진) 전투기 추락사고는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공군의 정비 불량으로 400억원대의 주력 전투기가 수장(水葬)된 것이다.

공군 사고조사위원회는 5일 "해상에 추락한 KF-16 전투기의 엔진을 수거해 분해한 결과 엔진 정비불량에 의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났다"고 밝혔다.

KF-16 전투기 추락 사고는 1997년 8월과 9월, 2002년 2월에도 엔진 결함으로 발생했지만 이번처럼 공군 자체의 정비 불량으로 일어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사고는 KF-16 전투기가 추락하기 나흘 전 발생한 최신예 F-15K 전투기의 날개 파손 사건과 맞물려 공군의 '기강해이'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F-15K는 기지 내 정비고로 이동 중 도로 부실과 부주의로 맨홀에 빠져 날개가 파손됐다. 사고조사위 박준홍 안전과장은 "KF-16의 사고는 엔진 터빈에 부착된 '블레이드(날개판)의 지지대(cover plate)'가 회전력을 못 이겨 떨어져 나가면서 엔진을 망가뜨려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의 블레이드 지지대는 내구성이 약하다는 사실을 미 공군이 2000년 발견, 2002~2004년 사이에 교체하라고 우리 공군에 통보해 왔다"며 "하지만 해당 부대가 이 전투기의 엔진을 정비할 때 교체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공군 조사위에 따르면 미국 히치너사가 제조한 교체 대상 지지대는 부품 일련번호가 'Z'로 시작하는데 이 사고 전투기 엔진에 34개나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전투기를 정비한 공군 제19전투비행단 소속의 정비 작업자는 2004년 6월 29일 엔진을 분해.정비하고도 문제의 부품이 한 개도 없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공군 관계자는 "당시 정비한 작업자가 교체할 'Z' 계열의 부품이 없다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엔진을 완전히 분해하지 않고 거짓 보고했는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당시 KF-16 전투기 가운데 27대의 엔진에 이 부품이 내장돼 있었으며 사고기의 엔진에만 문제의 지지대를 교체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공군은 2004년 사고 전투기의 엔진을 정비했던 정비사 등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블레이드 지지대를 교체하지 않은 배경 등을 조사 중이다. 또 지휘 감독자를 포함해 관련자 등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엄중 처벌할 방침이다.

공군은 F-15K 날개 손상과 KF-16 추락 사고 등 잇따른 사고에 대해 일벌백계의 원칙을 적용해 사고 관련자에 대한 문책과 함께 시설 안전성과 정비관리 체계를 전면 재검토키로 했다. 또 6일부터 19일까지 군 기강 확립을 위해 공군 전 부대에 대한 특별 직무감찰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블레이드 지지대=엔진의 연소율을 높이기 위해 터빈 내부에서 고속으로 회전하며 공기를 압축하는 블레이드를 고정시키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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