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소리 정말 싫어요”(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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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친구들과 미끄럼도 같이 타고 공놀이도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피하거나 놀리기만 할 뿐 아무도 같이 놀아주려 하지 않았어요.』
친구·가족으로부터 따돌림당해 대화·놀이 상대가 없자 집근처에 주차된 승용차등에 일곱차례 불을 질러온 김모군이 밝힌 범행동기.
『동생(7)도,학교나 동네친구들도 모두 공부도 못하는 바보로 취급했어요.』
「바보」소리가 죽도록 듣기 싫었다는 김군은 『내가 왜 바보냐』고 따졌다.
김군이 주택가에 세워둔 승용차·쓰레기통 등에 불을 지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19일.
길거리에서 주운 성냥으로 옆집 쓰레기통에 불을 질렀다.
다행히 주민들이 즉시 불을 꺼 다른 피해는 없었다.
방화사실이 알려지자 외할머니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다.
그러나 13일에는 놀이터부근에 버려져 있던 봉고차를 전소시켰고 20일에는 승용차에 불을 질러 시트를 태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화광」이 된 것이다.
김군은 특수학급에서 공부하는 학습지진아. 때문에 친구들이 「멍청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4년전 정신질환으로 가출한뒤 소식이 없고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어머니 이명란씨(33)는 아침 7시에 출근,밤늦게 귀가해 얼굴보기도 힘들었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7만원짜리 부엌도 없는 단칸방에서 할머니등 4식구가 가난에 시달리며 살았다.
『제대로 입히고 먹이지 못한 것도 가슴아픈테…. 왜 바보·멍청이 취급을 합니까. 가난이 아이를 바보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어머니 이씨의 절규에 가까운 항변이 코끝을 아리게 했다.<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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