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리당략에 눈먼 발상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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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당이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안에서 정당원의 무소속출마 규제조항을,민주당이 정치자금법 개정안에서 전국구헌금 양성화조항을 각기 신설한 것은 법리나 도덕적인 면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발상이다.
따라서 문제의 조항들은 어설프게 국민을 설득해서 국회통과를 시도하기전에 스스로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무리한 추진을 강행하다간 국민적 저항과 불신을 자초함은 물론 씻을 수 없는 후회를 가져다 줄지 모른다.
두 정당의 법개정 취지는 논리와 실질면에서 너무나 명분을 결여하고 있고 당리당략의 엉큼한 속셈이 풍겨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정치인들에게 과연 국민대표권을 맡겨도 되겠는가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우선 『당원가운데 무소속 출마자는 의원 임기만료 1백50일전에 탈당해야 한다』는 민자당안은 무소속 난립방치라는 허울이 어떠하든 그 저의가 명백하다. 3당합당과 5,6공 갈등 및 통합야당의 등장으로 조성된 국면악화를 모면하기 위한 잔꾀임을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민자당 의원치고 지역구 사정을 안심할만한 사람은 몇 안된다. 각 지역구에 어김없이 「한지붕 세가족」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공천만 결정되면 두가족은 무소속으로 뛰쳐나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야당통합으로 야당표분산 가능성은 줄어들고 6공에서 탈락한 5공 세력은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은 모두 자업자득이지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문제가 아니다. 3당통합을 어디 국민과 당원에게 물어보고 했는가.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세불리하다고 어거지로 법을 고쳐 상쇄하겠다니 말이 되는가.
무소속 출마 규제는 피선거권제한이란 위헌소지가 있다. 만약 그런 조항이 살아난다면 여당은 다시 정당지도부의 전횡과 독재가 유신이나 5공시절처럼 재현되는 분위기로 바뀔 것이다. 정당의 이익이 헌법과 국민의 기본권을 예사로 넘보고 다수당의 위력으로 그런 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묵묵히 보고 있을 국민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현실정치에 자신을 잃고 공정한 경쟁에 승산이 없다면 정권을 내놓을 각오부터 하는 것이 순리다. 다여일야의 고민은 법개정보다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푸는 것이 온당하다.
민주당의 헌금양성화도 국민정서를 무시한 당리당략의 발상이기는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기탁금·후원회 당비가 거의 1백% 여당에 의해 독식되는 풍토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그런 발상의 폐해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직을 돈으로 팔고 사는 제도가 생긴다면 세계적 토픽감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국회의원도 파는데 다른 자리라고…』라는 풍조가 우리사회를 엄습했을때 예체능계 부정시비는 한토막 에피소드로 축소되고 말 것이다. 매직의 합법화는 어떠한 경우든 오용의 소지가 더 크며,정치권은 국민정신과 사회기강을 붕괴시키는 일에 앞장서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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