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 히말라야 #2신] 유비의 땅에서 푸른 바다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풍스런 중국 거리의 풍광이 남아있는 칭따이루의 전경 사진 크게보기


그제까지 한국에서 바쁜 일상으로 인해 비몽사몽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한 탐사대는 25일(현지시간) 하루의 휴식으로 조금 원기를 회복했다. 중국 춘절연휴가 끝나지않은 터라 터미널로 향하면서도 ‘칭하이성(靑海省) 가는 기차표를 살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해했다. 청두(成都)역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터미널 바닥에서 노숙하면서 귀경표를 구하러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표 구할 수 있을까.” “하루 더 청두에 있을 시간이 없는데.”

걱정스런 마음으로 줄을 섰다. 중국에 여러 번 다녀봤지만 이렇게 질서정연한 줄을 본 것은 처음이다.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중국정부에서 계도를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새치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몇 명이 새치기를 시도하다 공안에게 망신을 당하고 쫓겨난다. 전광판에는 일주일 후까지 거의 모든 지역과 좌석이 매진으로 표시된다.

“아무래도 나흘 동안 버스 타고 가야겠는데.”

신준식(47ㆍ월간 ‘사람과산’ 사진기자)씨가 길게 한숨쉬었다. 그때 히로코가 말했다.

“외국인은 전용 티켓 창구가 있어요.”

아차, 싶었다. 히로코의 말대로 중국의 큰 기차역은 군인, 기자, 의사, 외국인 등을 위한 특별창구를 만들어 놓았다. 인민(人民)이 주인된 공산주의 국가에서 모순 같은 이야기지만 이런 차별(?)의 옳고 그름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특별창구로 갔지만 이곳도 많은 인파로 붐빈다. 두 시간을 줄 선 끝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상냥해 보이는 매표창구 여직원과 만날 수 있었다.

“골무드 표 있나요.”
“온니 투(only two)“

창구여직원은 내일 골무드로 가는 기차표가 전 열차를 통틀어 두 장이란다. 우리 셋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어렸다.
한참을 생각한 창구여직원이 말했다.

무료한 시간을 카드놀이로 달래며 기차시간을 기다리는 중국 청년들

"그럼 일단 골무드표 두 장을 사세요. 한 장은 청두와 골무드의 중간 기착지점까지 끊어 드릴게요. 아마 기차 안에서 구간을 연장할 수 있을 거예요"

뒤에 줄선 다른 중국 군인들의 “골무드, 골무드”라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기 전, 나는 황급히 돈을 세어주었다.
창구여직원에게 감사의 목례를 하니 환한 웃음으로 답한다. 긴 여행 조심하라는 웃음으로 다가왔다.

청두를 대표하는 것으론 여러가지가 꼽힌다. 청두는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촉(蜀)의 수도였으며, 중국 삼대 요리로 불리는 쓰촨(四川)요리로 유명하다. 시성(時聖)으로 불리는 두보와 도교사당인 칭양궁, 시내를 흐르는 단아한 민강과 그 옆을 자전거로 달리는 아름다운 아가씨들…. 이렇게 많은 역사유적과 특색 있는 음식, 그리고 로맨틱한 풍광의 도시다.

기차표를 사고 한숨 돌린 우리는 촉나라의 영웅 제갈공명(諸葛孔明)을 기리는 사당인 우호즈(武侯祠)로 향했다. 그곳에는 중국대륙을 호령하던 영웅호걸(英雄豪傑)이 다 모여 있었다.
“저는 공명을 좋아해요.” 히로코는 삼국지 팬이다. 각국 언어로 표현된 삼국지를 거의 모두 소장하고 있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그녀가 2004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유비, 장비, 관우의 금분 조각상을 지나면 가장 큰 사원 안에 공명이 긴 역사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다가선다. 좌룡우봉(左龍右鳳)의 방통(龐統)과 함께 유비의 대륙통일을 함께했던 그의 지략과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가 긴 벽면을 장식한다. 탐사 준비를 위해 서둘러 떠나야 하는 발걸음이 아쉽기만 했다.

사당을 나와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다음날 출발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지난달 후배가 중국등반 와서 우리를 위해 남겨놓은 많은 고소식량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정이 느껴진다. 불필요한 짐은 다시 정리해 최소한의 필요물품만을 골랐다. 짐 때문에 기동력이 떨어지면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중국 내륙의 ‘푸른 바다’로 불리는 칭하이성의 골무드로 3일간의 기차여행을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칭하이성이라는 이름은 칭하이후(靑海湖)에서 기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칭하이성의 끝을 알 수 없는 ‘고원의 초원’을 건너본 이들이라면 이 초원이 육지의 ‘푸른 바다’라는 걸 알 수 있을 게다.

골무드부터는 탕구라산맥이 탐사 가시권에 들어온다. 탐사대는 칭짱공루(靑藏公路)상 최고 고지에 위치한 탕구라 패스(ca5100m) 주위의 겔라다인동(6621m) 빙하 탐사에 나선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희박한 산소 속으로 출발을 알리는 힘찬 기적소리가 기다려지는 밤이다.

글=임성묵(월간 사람과 산)
사진=신준식ㆍ스즈키 히로코


※트랜스 히말라야 홈페이지 바로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