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 해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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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레닌이 어느날 KGB의 전신인 체카(CHEKA)창설자 제르진스키에게 물었다. 『당신 친구인 트로츠키도 임무라면 죽일 수 있겠소.』그는 진지한 자세로 대답했다. 『죽이지요. 러시아란 몸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팔 하나쯤은 잘라낼 수 있습니다.』이 대답을 들은 레닌은 『나도 머리자리에게 물러나는 날에는 제르진스키가 죽여버릴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었다고 한다.
「바퀴를 죄는 나사못」이란 뜻의 체카가 1917년 12월7일 혁명 수비대의 기치를 내걸고 창설된후 1919년말까지 반혁명분자로 몰아 재판없이 처형한 사람만도 1백만명이 훨씬 넘었다.
체카는 1922년 내무인민위원회 소속의 GPU(국가정치보안부)­23년 OGPU(합동국가정치보안부)­34년 NKVD(내무인민위원부)흡수를 거쳐 54년 KGB로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KGB는 정식직원 70만명,정보요원 수백만명,연간예산 49억루블(한화 약 22조원)을 쓰는 소련의 「붉은 권부」다.
군·당과 함께 74년동안 소련 공산주의를 받쳐온 3대 기둥의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KGB에 의해 처형된 소련국민의 수는 2천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외정보를 관장하는 제1총국과 국내보안 및 반체제활동을 담당하는 제2·제5총국,군기관 감시기능을 가진 제3총국을 두고 23만명의 국경경비군을 직접 관장해 왔다. 이밖에 대통령경호부대를 비롯한 각종 특수부대가 있고 타스통신 등의 언론사에도 요원을 상주시켰다.
KGB의 손길이 닿지않는 곳이 있다면 당중앙위정치국 정도였다고 한다.
소련의 KGB는 미국 CIA와 FBI의 기능에 정부기관 동태파악,관세 및 국경수비·일반시민 사찰권 등을 갖는 「정부속의 정부」로 군림해 왔다. 1936년 스탈린의 심복인 키로프 레닌그라드 시장의 암살사건도 스탈린의 명령에 따른 KGB(당시는 OGPU)의 공작이었음이 최근 밝혀졌다.
소련 당국은 쿠데타실패후 변신을 위한 대개혁의 수술대위에 올라있던 KGB(국가보안위원회)를 마침내 해체해버리기로 결정했다. KGB비슷한 국가정보기관의 정치사찰과 공작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지구상에 더이상은 없어야 겠다.<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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