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고대원시부족사회에서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싸움을 했다. 그러나 여성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도 그에 못지않게 잦았다.
고대 그리스의 전사들은 자신이 전쟁터에서 획득한 여자들을 정당한 전리품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강간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트로이 전쟁을 대서사시로 읊은 호머의 『일리어드』는 당시의 그런 성풍속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적을 굴복시켜 승리를 구가할때 크고 작은 강간사건이 빚어진다는 것은 그동안의 전쟁사가 증명하고 있다.
가령 신성한 목적을 띤 종교전쟁에서도 겁탈은 수반되었다. 첫 십자군원정에서 기사와 순례자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때 그들은 부녀자들을 겁탈하느라고 진격의 속도를 늦췄다는 기록이 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이처럼 인간의 전쟁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오랜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에 대한 연구는 의외로 미미한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의 우월성을 처음으로 주장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남성의 「무기」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폭력의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는가를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남녀간에 벌어진 역사적 힘의 투쟁을 언급하면서도 성폭행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융은 성폭행에 대해 언급은 했지만 불투명한 접근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성폭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런 장면을 관찰한 기록이 한건도 없다.
동물세계의 섹스는 오직 정당한 「짝짓기」에 국한될 뿐이다. 한 동물행태학자는 원숭이 수컷은 암컷의 허락과 협조없이는 암컷과 짝짓기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동물의 세계에는 강간이나 매춘이 있을 수 없다.
미국 대법원판사로 지명돼 의회의 인준을 기다리고 있는 클래런스 토머스 판사가 지난날 두명의 부하여성에게 성적학대를 했다는 구설수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성욕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운 투쟁」이라고 한 톨스토이의 말이 새삼 되새겨진다.<손기상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