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부시 對北정책을 주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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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대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지금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전망과 이번 대선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기에 적기인 것 같다. 대부분의 미국 대선은 주로 경제 이슈에 따라 결정돼 왔지만 때때로 외교정책 문제가 결정적일 때도 있다. 이번 대선이 바로 그런 때다. 미국이 전쟁 중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 국민 여론은 전쟁에 대해 첨예하게 갈라졌고 내년 대선도 이런 당파적 분열을 깊이 심화시킬 것이다. 이런 양당 대결구도에서 녹색당의 랠프 네이더처럼 제3당 후보가 기성 정당 지지층의 표를 흡수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백악관을 탈환하길 바라는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다. 유권자들의 표심도 민주.공화 양대 정당을 향해 거의 엇비슷하게 나뉘어 있다. 2000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앨 고어 후보를 내세워 총득표수에서는 앞선 적이 있었고, 현재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어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 경제의 회생에도 불구하고 '실업이 여전한 경기회복(jobless recovery)'상황이 민주당 지지층을 움직이도록 도와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 또 이라크 상황이 악화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강점으로 여겨졌던 국가안보 분야도 부시에게 불리한 쪽으로 바뀌고 있다. 사상자는 불어나고 테러공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평화를 재건하는 데 드는 비용이 치솟는 것도 민주당 희망의 근거들이다.

그러나 공화당에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을 책임지고 있는 칼 로브 백악관 정치담당 고문은 여전히 밝은 얼굴로 지내고 있다.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공화당 측의 등록 선거인단 수가 민주당 지지 선거인단과 같아졌고, 공화당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둬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했다. 최근엔 민주당의 텃밭이던 미시시피와 켄터키 주지사 선거와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선거에서 모두 승리해 내년 대선에 청신호가 켜졌다. 여기다 모든 지표들이 미국 경제가 내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은 첫번째 재임기간 마지막 해에 경제가 3% 이상 성장하면 재선에 성공한다는 법칙에 따라 부시 대통령도 재선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공화당으로서는 또 엄청난 규모의 선거자금을 비축해둔 상황에서 민주당처럼 정.부통령 후보를 정하는 예비선거를 치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실탄을 아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내년 대선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민주당은 한반도 문제를 잠재적인 대선 이슈로 보고 있다. 만약 북한이 핵활동을 가시화하는 길에 들어서 한계선을 넘기 시작하면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 문제는 제쳐두고 대량살상무기도 입증 안 된 이라크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해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북한의 추가적 도발이 현 행정부에 전략적인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정치적인 위협도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상황이 악화되면 현직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현 정부는 지금껏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침을 강조해오며 국제사회로부터 '일방주의'라는 비난을 피해왔다. 또 대북 협상에 중국을 끌어들여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하는 등 6자회담을 이끌어내는 외교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 국면에서 보수적인 공화당 열성당원들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개월간 현 정부의 선택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중동에 전면 개입해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분쟁위협마저 고조되는 것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협박에 굴복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 1994년 제네바합의처럼 북한과 어떤 타협을 고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내년 투표날까지는 다소 방어적인 자세에서 외교적인 '시간벌기 게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반도의 상황이 이런 태도를 허락할까. 한번 함께 지켜보자.

마이클 아마코스트 전 美국무부 차관.브루킹스 연구소장
정리=정효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