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라크 파병 흔들리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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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의료 비정부기구(NGO)인 글로벌케어는 경기도와 함께 이라크에서 3개월간 긴급 의료구호를 한 바 있다. 근래 바그다드에 장기 진료소를 준비하던 상황에서 한국인 두명이 피살됐다는 소식은 너무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모두 한국군 파병을 걱정하고 있고, 특히 인도주의적인 구호 활동도 중단 내지는 위축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상황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파병 자체가 미국과의 동맹관계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한국군 안전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라크 파병과 지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나오는 것도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간 의료구호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그곳 주민들의 고통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안전 문제로 이라크를 잊으면 편해질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자가 이라크 내 일반 주민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의 안전 문제를 위해 무조건 그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 그들은 과거 후세인 정권에서 거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진료를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만성환자는 방치된 상황이었고, 진료소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붐빌 만큼 처절하게 진료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료를 받은 후 우리의 진료와 도움에 대해 무척 감사한다고 하였고, 곧 장기 진료소를 열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곳으로 가야 한다. 물론 모두 걱정하지만 진료를 받지 못해 고통스러워 할 주민들을 생각하면 너무 우리의 안전만을 생각해 멈출 수는 없지 않나 생각한다.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지만 전쟁의 결과로 후세인의 잔혹한 압정과 지독한 가난에서 해방돼 미래의 민주정부와 경제 재건의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이라크 대부분의 주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미 군정이 주도하는 과도정부가 빨리 안정을 찾아 자주 민주정부와 경제 회복을 바라고 있다. 그들이 미군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빨리 안정되고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치안과 질서가 급선무이기에 현실적으로 미군과 다국적군의 도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그들은 일어설 수 있는 저력은 있지만 지금은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그 저력을 발휘할 수 없는 어려운 처지다. 이처럼 어려울 때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진정으로 도와준다면 그들 가슴에 깊이 한국인의 우정이 아로새겨질 것이다. 파병은 미국의 요청이지만 사실 미국보다 이라크 주민들의 요청이 더욱 절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이라크 재건을 돕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이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이 예상된다면 아무리 좋은 일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위험이 예상된다고, 더 큰 위험과 고통에 방치된 이라크 주민을 잊어버린다면 그 역시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라크의 모든 주민이 한국군 파병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를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를 넘어서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안정과 경제 회복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이 테러와 불안에 장기적으로 노출됨으로써 당할 고통은 우리나라가 과거 해방 후 겪은 혼돈과 분단 이상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라크 파병은 우리의 위험과 희생이 전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고통과 불안 가운데 있을 이라크 주민들을 생각할 때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기에 이러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결코 지연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성훈 글로벌케어 기획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