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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작자 이우석 유명감독 키운 대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일본의 전문영화지 「키네마순보」 6월 상순 호에 배창호 감독 인터뷰 기사가 나있다.
북해도 석장(유바리)국제모험·팬태스틱 영화제 심사위원을 하고 귀국 길에 동경에 들렀던 모양이다.
기사는 『깊고 푸른 밤』(85년) 등으로 일본 팬이 많은 그로부터 일본에서 새로 공개되는 『안녕하세요 하나님』(87년)의 배경과 근황에 대해 얘기들은 내용이다.
『깊고 푸른 밤』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제작이 동아수출공사(대표 이우석)로 되어 있다. 배창호의 다른 대표작 『적도의 꽃』(83년), 『황진이』(86년)도 다 이 회사 제작이다. 뿐만 아니라 이장호 감독의 제기작 『바람불어 좋은 날』, 박광수 감독의 데뷔작 『철수와 만수』와 『그들도 우리처럼』역시 이 회사제작이다. 지금은 어느덧 한국의 대표적 감독들이 되어있지만 그들이 아직 신진 기예의 청년감독 시절에는 모두 동아수출공사의 제작을 통해 무럭무럭 대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작자 이우석씨(1935년생)는 73년 이후 지금까지 18년간 74편을 제작했다. 1년에 4편씩 제작한 꼴이다. 비교적 왕성한 제작활동이다. 그는 당초 친구 아버지가 경영하던 외화수입전문 무역상 덕신공사를 돕다가 인수, 영화법이 개정되어 제작을 해야 비로소 수출입을 할 수 있게되어 제작을 시작했다. 거래상 중국·홍콩과 관계가 깊어 처음에는『황사진』(73년·장천호 각본·김시현 감독), 『일대영웅』(73년·강범구·팽창귀 공동감독) 등 한중 합작의 활극을 많이 만들었다.
지금까지 제작한 것 중 흥행이 가장 안된 영화는 『남사당』(74년·백결 각본·이규환 감독)으로 단성사에 4일간 걸어 1천8백63명이 들었다. 이 영화는 당초 유현목·최훈 감독 등 이규환 감독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후원회를 구성, 추천해왔기 때문에 제작했다. 영화가 완성된 후 시사를 보니까 너무나 예술적(?)이어서 당시로서는 큰돈인 2백만원을 더 내며 보충촬영하기를 종용했지만 이 감독은 도리어 화를 내며 거절했다.
흥행이 가장 잘된 영화는 물론 『깊고 푸른 밤』으로 명보극장에서 49만5천5백73명이 들었다. 그후 코리아극장에서도 10만7천1백91명이 들어 합계 60만2천7백64명이었다. 근래의 미국 올 로케 붐을 일으킨 도화선이 된 영화인데 사실은 이전에도 이 회사의 『황혼의 맨해튼』(74년·강범구 감독), 『애수의 샌프란시스코』(75년·정소영 감독)는 다 미국 올 로케였다. 아마 올 로케 영화라는 것도 때가 있는 모양이다.
가장 믿었다가 가장 실망한 영화는 역시 『황진이』였다. 한국 최초의 파나비존으로 그 당시 6억원이 투입되었는데 명보극장에선 4만8천1백13명이 들었다. 이것도 너무 예술적(?)이었다. 이상 나열된 영화들 외에도 이 회사의 대표작으로는 『이어도』(78년·김기영 감독), 『가을비 우산 속에』(79년·석내명 감독),『죽음보다 깊은 잠』(79년·김호선 감독), 『만추』(81년·김수용 감독), 『추억의 빛』(84년·정지영 감독), 『장사의 꿈』(85년·신승수 감독),『겨울나그네』(86년·곽지균 감독 데뷔작) 등을 들 수 있을까.
일본 「키네마순보」의 배창호 기사 중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마음씨 착한 신체장애인 안성기는 『레인맨』(88년)의 더스틴·호프먼이나 『나의 왼발』(89년)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장애인 연기보다 시간이 앞서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각각 열연하고 있으니까 누가 잘한다고.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이런 종류의 영화를 제일 먼저 제작한 것이 한국이었다는 사실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을까. 즉 한국도 이젠 소재의 모양과는 관계없이 내용만 훌륭하면 주저 없이 제작하는 제작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도 이우석씨가 수출입에 남다른 관심이 있으니까 뒤늦게나마 일본에 수출됐을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약 50편의 한국영화를 수출했는데 가장 비싸게 받은 것은『미워도 다시 한번』(68년·정소영 감독)으로 20만 달러를 받았다.
그는 또한 한중합작영화 약 20편을 만들어 대만영화제의 최고상인 금마상을 받은 적도 있다.
업계에서는 홍콩 중국 등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최근엔 미국영화 『늑대와 춤을』을 수입, 개봉하여 흥행사들의 예상을 뒤엎고 1백만명이 넘는 경이적인 흥행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항상 소란스런 제작 계에서는 한번도 표면에 나선 적이 없어 조용한 신사로 통하는 그는 아마도 은연중 가장 내실 있는 실력자의 한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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