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요코 거짓 이야기'에 교민들은 분노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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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첫째, 장소의 문제다. 이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내 학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둘째, 대상의 문제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익히 잘 아는 한국의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학교에서 그 책을 읽는 학생들과 한인 2세들, 그 부모에게 닥치는 문제다. 셋째, 내용의 문제다. 책 내용의 사실 여부 등도 있지만 어쨌든 책을 읽고 난 아이들이 불쌍한 일본인과 나쁜 한국인을 떠올리게 돼 있다.

이 문제로 워싱턴 주변 지역의 교육위원장을 찾아가 만나 가능한 한 신중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가진 작가를 폄하하거나 일본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일 간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만일 똑같은 스토리가 패전 독일의 나치 소녀나 미국의 독립전쟁 후 물러가는 영국군 딸에 의해 쓰인 것이라면, 그것을 감동적인 책이라면서 학생들에게 꼭 읽어 보라고 추천했을지 궁금하다고.

3억 미국인 대부분은 일본의 한국 식민통치를 모른다. 900쪽에 달하는 세계사 교과서에 대부분 서너 줄의 설명밖에 없다. 게다가 종군위안부, 창씨개명, 한글 금지, 중국 난징(南京) 대학살 등 인권문제는 기술돼 있지 않다. 선생님들마저 일본의 식민통치 내용이나 과거사 부인, 한.일 간 민감한 감정 등을 전혀 모른다. 그러니 작품으로만 보면 감동적인 그런 책을 추천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를 이해시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대사관이 미국 내 한인사회와 함께 자율권을 가진 수천 개의 교육구와 수만 개의 학교에 대해 풀뿌리운동을 벌이는 이유는 책을 트집 잡자는 것보다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권태면 워싱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