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 남자 여자×사랑÷이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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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연애 참고서

김호영 글.그림

눈과 마음

겨울 코트가 벌써 무겁게 느껴집니다. 공기 중엔 수상한 봄기운이 묻어납니다. 아내는 베란다의 철쭉이 벌써 피었다 졌다고 전하네요. 2월이 채 가기 전에 벌써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합니다.

뭘 해도 좋은 계절, 사랑이 빠질 수 없습니다. 막 사랑의 기대에 가슴 부푼 청춘, 무르익는 감정에 세월을 잊은 눈먼 이, 그리고 가는 겨울 같은 사랑의 끝자락에 매달려 한숨 짓는 이 모두에게 권할 만한 책을 만났습니다. 아무리 과외니 학원이니 하는 사교육이 판치는 세태라 해도 연애까지 참고서가 필요할까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게다가 '하던 연애 잘하기, 다음 연애 더 잘하기'란 부제를 보고는 이른바 '선수'의 체험적 실전지침인가 싶었습니다. 찬찬히 읽어보니 가볍지도,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은 것이 기특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집어내는 카피라이터가 쓴 덕인지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고, 발랄하면서도 웅숭깊은 단상(斷想)들이 빼곡했거든요.

'달라도 정말 많이 다른 남과 여 2'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누군가 자길 좋아한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자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자는 얼마나 많은 여자가 자길 좋아하는가를 따지지만, 여자는 어떤 수준의 남자가 자길 좋아하는가를 따진다"고 하네요. 설명 하자면 영 별로인 상대가 자기를 좋아한다면 여자는 "기껏 저런 남자나 날 좋아하니 난 이것밖에 안 돼"하고 자기를 깎아내린답니다. 반면 남자는 "내가 멋지긴 하지. 하여간 딴에 보는 눈은 있어서…"라며 자신을 높인답니다. 한창 열애 중인 이들에게 보내는 충고도 가득합니다. 그녀의 집 앞에 갑자기 찾아가는 감동 이벤트에도 요령이 있답니다.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는 날은 피하랍니다. 십중팔구 꾀죄죄한 차림으로 방구석을 굴렀을 거라나요. 그리고 좀 늦게 나와도 여유있게 기다리랍니다. 예쁘게 보이려고 뭐라도 찍어 바르고 나오려는 거라나요. 그러니 괜히 기분 좋게 만들어 주려고 갔다가 늦게 나온다고 성질 부리지 말랍니다. 누군가는 만나는 순간 이별은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쿨한 이별을 위한 처방이 빠질 수 없겠죠. '누구나 하는 이별, 너도 잘할 수 있어'가 그중 하나입니다. "나에게만 일어난 가혹한 운명 같아도 다 그렇게 살아. 나만 겪는 게 아닌데 나라고 왜 못하겠어. 잘 견딜 수 있을 거야. 혹시 알아? 운 좋으면 생각보다 빨리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대부분의 내용이 고개를 끄덕일 만했지만 성년이 된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은 따로 있었습니다. "결혼엔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고…. 언젠가부터 나 역시 그 사실을 조금씩 더 많이 인정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먼저'인 것만은 분명하잖아?"

너무 현실을 모르는 건가요?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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