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무시한 '아마추어 정책' 신뢰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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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세상 인심이 집권여당에 등을 돌렸다. 오죽했으면 최측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차기 대선에서 여당 필패론을 토로했을까?

정권 핵심 인사들은 억울한 심정일 것이다. 주요 경제 변수를 제대로 읽고 잘잘못을 판단하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연간 3000억 달러를 넘은 수출 실적과 경상수지 흑자 누적으로 외환보유액이 2400억 달러 수준 턱 밑에 있다.

환란 걱정은 접어 둬도 된다. 한때 무섭게 치솟던 국제 원자재 가격 오름세가 잠잠해 물가도 3% 안팎에서 잡히고 있다. 청년층 실업이 문제이긴 하지만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성의를 다했다.

반면 민간부문에서 구조조정 여파로 고용기회를 줄인 것과 국내 구직자가 3D 업종을 기피하는 것을 정부에 책임을 돌려야 하는가?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腱)인 부동산정책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듯이 그간의 융단폭격의 효과가 드디어 최근에 나타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여당의 지지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전파매체의 전폭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쇄매체들의 끈질긴 반정부적 보도가 주효했기 때문이고, 코드 인사라는 말이 나돌 만큼 골라 앉힌 직업 관료와 외부 인사들의 개혁 마인드가 건성건성 대충대충이었던 탓이 아닌가?

코드 인사에 더욱 철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집권기간이 연장되기를 바라는 미련이 교차할 것이다. 서민을 위한 선의와 충심이 전무후무할 만큼 각별했던 초심(初心)이 배반당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초심은 나름대로 모두 신의와 충심으로 충만했었다.

집권 후 평가는 초심이 아니라 실적이 기준이다. 좋은 실적은 주어진 자원 제약조건을 올바로 인식하고 목표를 우선순위에 따라 공략하는 데서 나온다.

현 정부의 실패는 주어진 제약조건을 무시한 데서 출발했다. 5년 단임이란 시간적 제약을 외면했기에 국정과제 선택과 국력 집중에 느슨했다.

과거 정부와 미래 정부 간의 분업(分業)을 고려하기는 커녕 영구 집권과 행정 만능인 듯 착각하고 국민 위에 군림했다. 자원의 제약을 무시해 불 내고 불 끄려는 꼴이 부동산 정책이었다.

무경험자를 참신.청렴한 개혁세력으로 보고 전문 인력을 오염된 기득계층으로 몰았다.

전자의 무능.부패가 국민의 신뢰 상실로, 후자를 멀리하면서 아마추어 조치들로 이어졌다. 가진자를 죄인시함으로써 아래로 흘러내릴 지출 흐름이 막혀 서민생계가 더욱 간고해졌다.

정부의 비호 아래 간이 커질 대로 커진 귀족 노조 시위 등쌀에 기업의 해외이전, 하청기업의 임금 압박, 신규 노동의 진입 애로가 조장됐다. 비대해진 정부기구들의 온갖 규제들이 투자 마인드를 질식시켰다.

아직 임기 1년이 남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특정 과제를 잘 매듭지으면 낙제 평가를 면할 수 있다. 대통령이 민생 챙기고 실무자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한다. 레임덕 탓, 언론 탓할 시간이 없다. 선거 전 과도한 경기 부양책으로 차기 정권에 부담 주지 말아야 한다. 정권은 짧고 경제는 길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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