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시시각각

202명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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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러분 202명은 2007학년도 초.중등교원 임용시험 합격자 중 5%를 차지하는 장애인 선생님입니다. 합격자의 5%가 장애인에 할당된 것은 사상 처음입니다. 재작년 5월 '장애인고용 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개정된 덕분이지요. 옛날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었습니다. 참 잘된 일입니다.

25년 전 이맘때, 저는 한 지방도시의 시장골목 주점에서 절친한 K선배와 새벽까지 통음을 했습니다. K선배는 마시다 울고, 허공에 대고 소리치다 다시 흐느끼곤 했습니다. 저는 달리 위로할 말을 건넬 엄두조차 못 내고 그저 소주만 입에 털어넣었습니다. 식탁 위엔 교육청에서 K선배에게 보낸 '친절한' 통지서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귀하에게는 4년간 중등학교에서 교원으로 복무할 의무가 있으나, 특별히 이를 면제해 드림을 알립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엔 국립사범대학을 졸업하면 자동으로 일선 학교에 발령났습니다. 재학 중 학비를 일부 면제받는 대신 4년간 교사로 근무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교사 수급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한 제도였지요. 그러나 K선배는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번이나 수술을 받은 지체장애인이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던 그는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수석으로 합격했습니다. 무사히 졸업까지는 했지만, 나라에서는 그를 부적격자로 낙인찍었습니다. 교사가 갖추어야 할 '온전한 심신'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본 겁니다. 낙담한 K선배는 "차라리 너는 병신이니 안 된다고 할 것이지, 무슨 특혜라도 주는 것처럼 의무복무 면제는 또 뭐냐!"라며 울부짖었습니다.

도대체 '온전하다'는 게 무얼까요? 이 단어가 왜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돌변해 K선배를 덮친 것일까요. 제가 오늘 축하드리는 202분 선생님도 당시 기준으로는 '온전치 못하다'는 말이 되네요. 황당하지 않습니까. 정작 온전치 못한 것은 K선배가 아니라 국가요, 교육청이요, 사회 인식인데 말입니다.

K선배는 한동안 방황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화실을 열었습니다. 입시미술을 지도했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잠잘 때 자주 꾸던 교단에 서는 꿈도 몇 년 지나니 사라졌답니다. 오십줄에 접어든 K선배는 지금도 지방 도시에서 화실을 운영합니다. 그는 장애인 선생님 여러분이 "너무나 반갑고도 부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202명 여러분, 열심히 사십시오. 열심히 가르치십시오.

휠체어를 탄 1급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교사직에 신규 임용된 분은 대구 덕화중의 채정균(37) 선생님입니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2003년 교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98년 말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장애인이 되었지만 지레 포기하지 않고 교원임용시험에 도전했습니다. 그가 등록한 임용고시학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습니다. 학원 직원들이 계단을 통해 4층 강의실까지 그와 휠체어를 올려주었습니다. 화장실이 3층에 있었기 때문에 수업을 앞두고는 아예 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공부해 두 번의 도전 끝에 합격증을 따냈습니다. 대구시교육청은 채씨를 교무실과 미술실이 1층에 있는 덕화중에 발령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조금씩 '온전하게' 바뀌어가는 듯하네요.

하반신 마비라서 채 선생님은 다리가 아주 가늡니다. 교사생활 초기에는 동료 교사나 학생들에게 다리를 보이기 싫어 두꺼운 천으로 된 바지만 입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감추지 않습니다. "난 다리가 좀 날씬해"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채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내 몸으로 안 되는 것은 인정하되,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적극적으로 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니 202명 여러분, 당당하십시오. 장애를 애써 감추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교단에 섬으로써 장애인을 막 대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장애'도 약간은 치유된 느낌이네요. 202명 선생님 여러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