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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검·성실 국민기풍 살릴때”/창간 26돌기념 노 대통령 특별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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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폭발적 변화는 오히려 위험/독일과 달리 공동체 다지며 통일/한중수교 서둘지 않아/남은 임기 경제발전에 최선
『북한의 개방은 필연적입니다.』
올해 국내 신문으로는 처음으로 본보와 회견을 한 노태우 대통령은 유엔출발을 앞두고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에 따른 통일여건의 성숙을 힘주어 강조했다.
신축된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1시간동안 계속된 회견에서 노대통령은 미묘한 국내정치문제에 관해서는 「법절차와 당헌의 준수」만을 강조했을 뿐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으나 경제난국은 솔직히 인정하면서,그러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며칠후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시게 되는데 유엔동시가입이 남북한관계,나아가 한반도통일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십니까.
『한국의 유엔가입을 가로막아 온 것은 냉전체제였습니다. 남북한 유엔가입은 냉전체제가 무너졌음을 말합니다.
이제 유엔회원국이 된 남북한은 무력사용을 포기하고 유엔헌장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북한이 공존공영하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남북한이 두 의석으로 유엔에 들어가는 것은 잠정적 단계이며 그것은 통일과정을 촉진하게 됩니다. 세계의 모든 장벽이 무너지는 변혁속에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온 우리 겨레가 통일을 이루는 것은 역사의 순리일 것입니다.』
­이번 세기말까지는 통일한국을 기대한다고 하셨는데,통일을 아직도 낙관하고 계신지요. 또 통독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내부적으로 북한은 극심한 어려움속에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는 석유와 식량… 일상생활까지 매우 궁핍한 상태일 것입니다. 바깥으로부터 개혁물결의 압력을 맞으며 정치적 어려움도 가중될 것입니다.
북한주민이 바깥 세계를 알게 되면 북한의 변화는 가속화될 것입니다. 나는 남북한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되면 그 변화가 급진전할 것으로 봅니다.
나는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큰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독일통일에 가장 큰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은 한국국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이 내부로부터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변화할 경우 파생될 위험성과 부작용을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변화가 질서속에 서서히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독일식 통합방법과는 달리 남북한이 교류협력을 통해 공동체를 이뤄가면서 정치적 통합의 여건을 성숙시켜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평양측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찰에 응하는 대가로 한반도에서 핵무기 철수를 지지하고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고려해볼 생각은 없으신지요.
『북한은 아무 조건없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만의 부분적인 비핵지대화는 큰 의미가 없고 비현실적입니다. 북한이 군사적 신뢰구축에 호응하여 긴장을 완화하고 핵무기 개발을 분명히 포기하면 우리는 군사적 대결을 해소해 나가기 위한 어떤 문제도 북한측과 협의할 용의가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나는 남북간 교착상태 타개를 위해 남북 정상회담을 열도록 제의한 바 있고 이 제의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한국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나 강화시키는 것으로 아는지 모르지만 이는 착각입니다.
우리가 저들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는 것인데…. 최고책임자끼리 만나 나누는 한마디가 협력의 첫걸음이 되고 그것만으로도 관계개선에 큰 진척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북한측은 불가침조약이니,뭔가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있고 우리는 그게 안되니까 양측 최고책임자가 만나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유엔 동시가입으로 남북한 관계에 변화가 생겼고 이에 따라 휴전체제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휴전체제가 바뀌면 유엔사해체 얘기가 나올 수 있고 주한미군 철수문제도 제기될텐데요.
『남북한은 전쟁도 평화도 아닌 불안한 휴전상태에 있습니다. 이제 불안정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일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전쟁과 도발을 억지해왔을 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에도 결정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주한미군 문제는 휴전체제의 변화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중국과의 수교전망은 어떻습니까. 유엔 가입으로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만,언제쯤 중국을 방문하시게 되는지요.
『중국도 우리 유엔가입 권고결의안에 서명을 했습니다. 유엔가입은 한중관계의 정상화를 앞당길 것입니다. 문제는 그 시기인데…. 우리는 중국의 입장과 외교정책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래서 서둘지 않을 것입니다.』
­유엔가입으로 남북한관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듯 국내정치의 질도 달라져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제 국내정치도 정책대결이 이뤄지는 창조적 풍토가 정착돼야 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판치는 정치분위기는 지나간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권이 국민에게 불신받고 있는 현실을 여야 모두가 직시,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번 뉴욕행에는 김영삼 민자당대표,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도 함께 가는데 이분들과 정계재편·개헌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두분과는 국내에서 언제든지 만나 필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해외에서까지 국내정치문제를 얘기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지난 7,8월 정치일정 논의를 연말까지 중지토록 여권에 지시한 바 있습니다만 정치일정에 관한 대통령의 복안은 정말 어떤 것인지요. 일부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미룬다는 소문도 있는데 시기를 분명히 밝히실 수 없으십니까.
『정치일정은 헌법과 관련법에 정해진대로 시행될 것입니다.
정치란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정치인을 위한 정치… 나라의 힘을 소모하고 문제를 만드는 정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게 내신념입니다.』
­집권당의 차기후보는 순리적으로 승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를 두고 여러갈래의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후계자를 지명하실 작정인지,아니면 완전히 경선에 맡겨두실 것인지요.
『후계자가 아니라 차기후보 선출문제겠지요. 차기 대통령 후보 선출절차는 당헌에 정해져 있습니다. 민자당은 대통령후보를 당헌에 따른 민주절차에 따라 선출할 것입니다.』
­당총재로서 14대 총선의 공천권행사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공천문제에 대해서는 3당합당때 이미 양해가 이뤄졌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명망있고 자질을 갖춘 인사,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사를 당헌절차에 따라 공천할 것입니다.』
­최근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급속히 퍼져 걱정의 소리가 높습니다.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잃고 순외채가 1백억달러를 넘어서 이대로 주저앉는게 아니냐는 우려들입니다. 이 위기론에 대한 정부의 진단과 처방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 경제가 이처럼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된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경제 각 부문이 구조적 전환기를 거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임금은 오르고 생산성은 떨어지고,또 시장개방이 본격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이런게 물가와 국제수지를 불안케 하고 있지만 이제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성장세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도 11∼12%의 견실한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물가안정·제조업경쟁력 강화시책 등을 추진해 나가겠지만 소비자들도 과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근검과 절제·성실의 기풍을 온 국민이 살려야 할 때입니다.』
­경제정책 운용방법을 두고 정계나 경제계에서 이견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경부고속전철문제도 그 하나입니다만.
『80년대에 우리는 안정에 너무 집착,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소홀히 하여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2000년대의 선진경제를 이룩하려면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이 무엇보다 절실하며 기본적으로 재정에서 부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부고속도로를 처음 건설할 때 반대도 많았고 심지어 유흥도로로 몰아붙이기도 했는데 우리의 경제와 교통실정 등을 감안할 때 고속전철 건설도 유사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제수지문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6공출범당시 외채가 2백24억달러였는데 지금 1백6억달러가 남았습니다.
반절은 갚은 셈이지요. 5공은 1백50억달러를 떠안고 출범했고요. 경제팀을 꾸짖기는 하지만 사실 기특한 점도 없지 않습니다. 무역수지는 흑자건 적자건 1백억달러를 넘으면 비정상이라고 합니다. GNP의 5%선이 정상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비추어 볼때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재임중 주택 2백만호 건설은 달성했으나 지나친 건설사업으로 재테크와 부동산투기를 조장해 우리경제를 「거품경제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집문제가 해결안되고서는 진정한 민주주의·복지사회도 실현할 수 없다고 판단,2백만호 건설을 밀고 왔습니다. 금년 8월로 목표가 달성됐으므로 앞으로는 공급할 수 있는 자재와 인력의 범위내에서 집을 짓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재테크와 투기현상은 흑자시대 돈의 흐름을 올바르게 유도하지 못한게 주된 원인이지 2백만호 주택건설의 영향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민주화의 추진과정에서 사회의 자체 통제력이 무너진 감이 없지 않습니다. 공직사회의 부패·호화·사치풍조·마약사범 증가 등 사회질서가 크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사회병리현상 치유를 위해 법집행을 더욱 엄정하게 하고 시대에 안맞는 제도나 규정은 과감히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사회문제에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의 자정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 할 겁니다. 일반시민 1백명이 저지르는 잘못보다는 한사람의 공직자 잘못이 더 문제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임기 종반기의 관리를 위해 좀더 긴장감있는 국정운영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나와 정부도 노력할 것입니다만 대통령보다 훨신 강력한 언론들이 앞장서 주십시요.
미 워싱턴의 경우 살인강도 사건으로 인구 60만에 연평균 4백명이 숨지고 있고 서울은 1백명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의 치안에 문제가 더 있는 것처럼 비춰지니….』
­임기 1년5개월여를 남기고 집권하반기에 접어들었는데 어떤 부분에 가장 역점을 두실 생각입니까.
『평화와 통일의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나 통일도 경제력의 바탕위에서 이뤄질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노대통령은 회견을 마치면서 『불과 10년 앞으로 다가온 새로운 세기엔 우리나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면서 『중앙일보가 이런 변화를 창조적으로 앞장서 이끄는 신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정리=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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