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한가위/「어두운 이웃」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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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집 잃고 천막서 더부살이/빈들판서 수확없어 한숨/수재민들/폐광·체임… 온정의 손길 아쉬워
한가위를 근심속에서 지내야 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많다.
태풍으로 집을 잃고 더부살이 천막생활을 하는 수재민들,수마에 논이 휩쓸려가 벼 수확을 못하게 된 농민들,탄광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노임이 체불돼 귀향하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바로 「우울한 추석」을 맞는 우리의 이웃.
수확의 기쁨을 함께 하는 민족명절을 앞두고 불행한 이웃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온정의 손길이 아쉽다.
◇이재민=태풍 글래디스 내습으로 형산강이 범람,큰 피해를 본 경북 경주군 안강읍의 경우 주택이 전·반파된 4백92가구 2천여명이 집을 새로 지을 엄두도 못낸채 이웃집 단칸방에 더부살이 하거나 공공시설에서 고통스런 추석을 맞고 있다.
침수됐던 집이 무너질 지경에 놓여 손자와 함께 안강역 대합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복룡씨(69·여)는 『조상께 차례올릴 면목도 없다』며 한숨지었다.
안강의 경북도내 5백15가구 3천여명,부산 1백40가구 4백80명,경남 37가구 1백32명의 이재민들도 딱한 사정은 마찬가지.
부산 이재민의 경우 38가구 1백50여명이 양정1동 임시막사와 수정4동 사무소에 분산 수용돼 있으며 나머지는 친척집·월세방을 전전하고 있다.
임시막사에 수용된 공학순씨(33·여)는 『밤기온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여름담요 몇장으로 버티느라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고 출산까지 앞두고 있어 살길이 막연하다』며 『복구대책은 커녕 찾아노는 사람도 없어 쓸쓸하다』고 말했다.
◇수해 농민=경북지방에서만 논 2만1천여㏊가 침수·유실·매몰돼 황금빛으로 물들어야할 벼논이 쭉정이만 남은 「실의의 들판」으로 변했다.
논 1천5백평이 토사에 휩쏠린 안강읍 최춘영씨(58)는 『조상 차례상에 올릴 햅쌀도 수확하지 못했다』며 넋을 잃고 있다.
전남 광양군 옥룡면 운평리 허만철씨(71)는 『2천평 벼농사중 1천평은 벼한톨 수확할 수 없이 망쳤고 나머지는 반타작이나 될 것 같다』고 탄식했다.
◇탄광촌·공단=강원도내 광동탄광 등 9개 업체 1천6백여명의 광원들이 20억원의 임금·상여금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태백시 한성광업소 성원탄광 등 4개 탄광 광원 1천여명은 회사측이 폐광을 신청,추석귀향은 고사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지난 11일 개광 44년만에 문을 닫아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경북 문경군 봉명광업소 광원 8백91명중 2백명은 일자리를 구했으나 나머지 6백91명은 실의에 빠져있다.
실직광원 김전주씨(42)는 『당장 생계가 걱정인데 고향을 찾아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태풍 글래디스 강타로 1천5백억원의 피해를 낸 부산 금사·반여·사상공단 8백여 업체중 특히 2백여 업체는 자금난으로 추석휴가나 상여금 지급을 결정하지 못한데다 상당수 업체가 상여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어 근로자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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