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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원 영화감독 "영화로 이끈 건 아버지보다 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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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일부터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홀과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리는 제2회 서울독립영화제(02-362-9513/www.siff.or.kr)에는 '청년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젊은 영화학도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상업영화에 밀려 좀체 극장을 잡을 수 없는 '비주류' 영화들이 관객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중.단편 51편, 장편 9편 등 모두 60편이 올라온 이번 영화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20분짜리 단편 '원 파인 데이(One Fine Day)'를 출품한 하준원(27)씨. 지난달 열린 제11회 칠레국제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탄 '원 파인 데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인간 관계를 뛰어나게 고찰했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도 작품이려니와 하씨가 주목을 끈 이유는 그가 배우이자 감독인 하명중(56)씨의 둘째 아들이라는 점이다. 38세로 요절한 천재감독 하길종이 큰삼촌이기도 하다. 하준원씨는 기자의 이런 속된 관심을 알아챈 듯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아버지나 큰삼촌의 명성에 기대 주목받거나, 그 관계 속에서 내 존재가 인식되는 게 너무 싫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199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3기로 입학해 군복무를 마치고 올해 졸업했다. '원 파인 데이'는 영상원 졸업작품이다.

"최인호씨의 단편 '유령의 집'에서 모티프를 얻어 내 식대로 고쳤다. 실직한 가장이 아내, 딸과 소원하게 지내다 어느 날 집을 나선 뒤 아내에 대한 갖가지 환영을 보면서 가족과 화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아주 관심이 많다. 현대인은 너무 단절된 채 지낸다. 이런 소외와 단절감을 해소하는 데 내 영화가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좋겠다."

그는 현재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에 연출부로 참여하고 있다. 2년쯤 뒤에는 장편 영화로 데뷔할 생각이다.

"장편을 한다는 건 평생 함께할 결혼 상대를 만나는 것과 같아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회 현상이나 현실에 대한 끈을 놓치 않는 영화, 특히 인간 관계에 천착하는 영화를 하고 싶다. 그러나 리얼리즘적인 스타일보다는 미스터리 같은 장르적인 틀을 선호한다. 물론 '아 저건 하준원 영화다'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게 취향과 스타일이 분명한 작품을 하고 싶다."

영화 공부를 하면서 좋아하는 영화도 다소 바뀌어 과거엔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작품을 선호했으나 요즘은 '디 아워스' 같은 영화나 '매그놀리아' 등을 만든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영화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 감독으로는 김기영 감독 작품에 끌린다고.

'영화 가족'속에서 성장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는 영화 일을 할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법대를 준비하다 낙방하고 재수를 하던 중, 지금 연극 배우로 활동 중인 형(하상원.31)이 "야, 영화도 재미있고 할 만한 일이야"라며 영화쪽으로 진출하기를 적극 권했다. 그렇게 밀리다시피 영화를 공부해왔지만 지금은 "만약 법전 읽는 일을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싶으리만치 영화 창작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넌지시 아버지 작품에 대해 묻자 "아직 정확히 분석할 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빼면서도 "'땡볕'은 아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고 평가했다.

"영화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걸 절감한다. 내 안에 채울 게 너무 많다는 걸 절감하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 모든 훌륭한 감독들이 그렇듯이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영기 기자<leyoki@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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