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국토 개발 공약은 국토 망칠 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아직 열 달이나 남은 대선이지만 벌써 각종 공약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선거가 정책 대결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 가운데 국토 관련 정책도 빠질 수 없는 메뉴처럼 등장하고 있다. 나라를 이끌겠다는 목표에 국토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선거 기간 중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채 졸속으로 급조된 공약 때문에 장기적 계획에 따라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국토정책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이로 인해 국가 재정이 낭비된 사례가 허다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새만금 사업이다.

새만금 사업은 1987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전북 지역의 민심을 얻기 위해 환경 측면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졸속으로 발표한 공약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방조제가 완공되기까지 20년 가까이 환경문제에 대한 논란 때문에 수차례에 걸친 재판 등으로 공사의 중단과 반복이 거듭되면서 1조원에 가까운 국민 세금을 낭비했다. 이뿐만 아니라 방조제로 생긴 내해를 매립할 것인지, 매립한다면 무슨 용도로 활용할지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분분한 상태다. 당초 목적이던 논으로의 활용은 쌀이 남아돌고 농업 개방 등으로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반면 다른 용도로의 이용도 환경문제 등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는 행정도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다.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 이전 공약으로 "재미 좀 보았다"고 스스로 시인했듯이 수도 이전은 충청 표를 의식해 급조한 공약이었다. 행정수도 건설은 이미 79년 경제성 등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무산됐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니 수도 이전 공약의 추진이 불가피해졌다. 그 과정에서 수도 이전이 위헌 결정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수도 이전은 행정도시 건설로 변형됐다.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균형발전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란 것이 많은 전문가의 예측이다. 벌써 공무원들의 통근열차 계획이 발표되고 이전 대상 공무원의 80% 이상이 서울에 집을 유지하겠다고 하는 등 수도권이 충청 연기 지역으로까지 확장되거나 서울과 행정도시 간의 강한 교통축만 생겨날 뿐이라는 전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편 토지보상으로 4조원에 가까운 돈이 풀리면서 충청지역과 수도권의 부동산 값을 올리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국토정책 관련 공약으로 인한 부작용은 이 뿐이 아니다. 2002년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 노선 재검토와 경부고속철 2단계사업의 천성산 터널 재검토 및 경인운하 백지화 등도 공약으로 함께 내놓았다. 그러나 천성산 터널과 사패산 터널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불가피함을 이해하게 돼 건설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됐다. 결국 완공 시기가 늦춰지고 이로 인한 비용만 추가된 셈이다. 한편 경인운하도 건설의 필요성이 계속 거론되면서 관련 단체들로 협의체가 구성됐으나 아직까지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어떤 부문의 공약이든 신중하게 만들어져야 하겠지만, 물리적인 계획이 뒷받침돼야 하는 국토정책은 그 부작용이 길고 영구적인 만큼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내놓아야 할 국토정책이 있다면 기존 국토기본계획을 제대로 검토해 적합성을 따져 보고, 경제성이 있는지와 관련한 타당성 검증도 확실하게 한 다음 발표해야 할 것이다. 급조된 국토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뒤 이를 당선 후 무리하게 추진하느라 대대손손 이용해야 될 국토를 훼손하고 국민 세금을 낭비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한편 국민은 대선 후보들이 내거는 인기 위주의 국토개발 관련 공약에 대해 내 지방 이해관계에 급급하기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지혜를 갖춰야 할 것이다.

신혜경 전문위원 겸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