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논술한다] 악플 해결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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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글 : 악플은 근거 없는 사실을 유포하고 남을 비방하는 행동으로 심하면 상대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행동은 악플의 대상이 되는 사람뿐 아니라 우연히 그 글을 보게 된 다른 네티즌의 감정까지 상하게 한다. 악플의 대상이 불특정 다수인 경우에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뿐 아니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위한 댓글란이 악플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욕설과 비방이 가득 찬 싸움터로 변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①이처럼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는 악플은 인터넷의 발달과 이용자의 도덕적 의식 발달의 속도 차이로 인한 '문화 지체'의 산물이다.

악플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②한 가지는 익명성의 뒤에서 순간적으로 자제력을 상실하고 댓글을 다는 경우이다. 이런 일시적인 악성 댓글은 그 영향 또한 크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는 다른 네티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과장된 악플을 다는 경우로, 문제가 되는 악플의 대부분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해 댓글을 달고, ③자신의 생각은 없이 상대를 비방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댓글을 다는 악플러들은 습관적으로 악플을 달고, 네티즌의 질책에도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악플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을 즐기기 때문에 네티즌의 힘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런 악플러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론되는 것이 인터넷 실명제다. 하지만 ④문제가 되는 악플의 대부분이 익명성보다는 도덕성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명제로는 악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거론되는 실명제는 댓글을 달기 전 본인 확인을 하는 것으로, 이미 여러 포털사이트에서 로그인이라는 형태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형 포털에도 악플러는 존재한다. 한마디로 지금 시행하려는 실명제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 지금 완전히 익명으로 운영되는 사이트가 실명제로 바뀐다면 그에 부담을 느낀 네티즌의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졌을 때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비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명제는 악플러들에게는 별 영향도 미치지 못하면서 오히려 익명이기에 가능했던 자유로운 비판마저 막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실명제가 악플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실명제를 시행하고 단기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보다는 악플러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하고 미래의 네티즌이 될 어린이들에게 인터넷 예절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육해 장기적으로 악플러들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황가람(경기 산본고1)



총평과 첨삭

악성 댓글(악플)의 발생 원인과 부작용을 설명하고, 인터넷 실명제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논하라는 문제였다.

많은 학생이 응모했지만 눈에 띄는 글을 찾기 어려웠다. 황가람 학생의 글은 악플의 부작용, 악플의 유형과 원인, 해결책을 순서에 따라 서술한 데다 논제가 요구한 사항을 잘 정리해 채택했다. 글의 구성이 좋다는 말이다.

아울러 ①에서 악플을 '문화 지체 현상'의 일종으로 규정한 것이나 두 번째 단락에서 악플의 유형을 심리적 원인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한 것 등은 다른 글과 차별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짜임새가 덜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우선 ②에서 '익명성의 뒤에서'라는 표현이 모호하다. 대다수의 악성 댓글은 익명성을 배경으로 쓰는 것 아닌가? 따라서 '습관적인 악플러와 달리 인터넷에 게시된 특정한 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일시적.충동적으로 댓글을 쓰는 경우다'처럼 구체적으로 의미를 드러내는 게 좋다. ③도 모호한 표현이다. 좀 더 분명하게 의미가 나타나도록 '자신의 글이 미칠 영향은 깊이 고려하지 않은 채'처럼 써야 한다.

④는 악플이 인터넷의 익명성보다는 인터넷 사용자의 도덕성 부족 때문에 생긴다는 주장을 마치 당연한 듯 간단히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은 이 주장이야말로 이 글에서 논증돼야 할 핵심적 주장이다. 익명성이 악플의 주요 원인이 아니라면 인터넷 실명제가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럼 익명성이 악플의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근거는 어떻게 댈 수 있을까? 예컨대 익명성이 악플의 원인이라기보다 악플을 자제하기 힘들게 만드는, 또는 악플을 맘 놓고 쓰게 만드는 '조건'이나 '배경'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익명성을 이처럼 '원인'이 아닌 '조건'으로 본다면 인터넷 실명제 같은 제도는 '원인'에 대한 궁극적인 처방이 아니라 '조건'을 바꿔 문제를 다소 완화시키는 방책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렇게 되면 황가람 학생이 지적한 것처럼 실명제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더 명확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성환(즐거운학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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