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민주화 2년…6개국 현장에 가다 가톨릭 르네상스 커지는 교세…갈길정립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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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5월 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북서쪽 30km에 위치한 에스테르곰 대성당에선 역사적인 행사가 거행됐다.
이날 고요제프 민첸티추기경의 유해가 오스트리아로부터 돌아와 에스테르곰 대성당 지하묘지에 묻혔다. 민첸티추기경은 생전에 『부다페스트국회의사당 뾰죽탑에서 붉은 별이 떨어지면 내 유해를 고국 헝가리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민첸티추기경의 생애는 반공투쟁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l948년 점령군인 소련군정에 의해 반공분자로 체포돼 56년까지 영어의 몸이 됐다.
56년10월 헝가리에서 반공의거가 일어나자 민첸티추기경은 일단 자유의 몸이 됐으나 소련군이 들어오자 부다페스트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했다. 그후 무려 15년동안을 그곳에서 살아야했다.
71년 바티칸은 민첸티추기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헝가리정부와 타협했다. 민첸티추기경을 국외로 내보내는 대신 그가 대주교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한다는 조건이었다.
민첸티추기경은 헝가리와 가톨릭교회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대주교직을 버릴 수 없다고 버텼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첸티추기경은 그후 오스트리아로 망명했으며 75년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5년후인 지난해봄 헝가리공산정권은 선거를 통한 평화적 방법으로 무너졌다. 민첸티추기경의 유해는 본인의 유언대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헝가리 국민들은 그를 국민영웅으로 맞아들였다.
공산체제하에서 동유럽 교회가 겪었던 수난은 혹독한 것이었다. 스탈린주의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몰아 성직자들을 투옥, 처형했었다. 교회활동은 반공활동의 본거지로서 철저히 감시당하고 예배참석자들은 비밀 경찰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폴란드에선 비신스키대주교가 체포되고 체코에선 지방장관이 성직자 임명권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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