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강직한 장군 → 비정한 의사 연기 수술도 천재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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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둥그스름한 콧날, 까만 눈동자. 언뜻 보면 온화하다. 그러나 미간에 살짝 힘을 주자 이내 눈빛이 달라진다. 살짝 들어올린 입 꼬리에선 참을 수 없는 경멸감이 묻어난다. 상대를 쏘아볼 때면 소름마저 돋는다. 불과 2년 전 인자하고 강직한 이순신 장군 역할을 해냈던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MBC 주말드라마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역의 김명민(35.사진).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 촬영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외과 과장 자리를 둔 치열한 경합이 끝난 뒤 극은 본격적인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의료사고로 법정 분쟁에 휘말린 장준혁은 후배 의사에게 거짓 증언까지 시켜 가며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그러나 그의 잘못을 낱낱이 아는 동료 의사 최도영(이선균 분)이 원고 측 증인으로 나서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는다. 이날 김명민은 법정 출두 장면을 찍고 있었다.

◆외과 의사라는 자리=극중의 그는 국립대 병원의 외과 전문의다. 개봉을 앞둔 영화 '천 개의 혀'에서도 외과 의사를 맡았고, MBC 의학 다큐멘터리 '닥터스'도 진행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의사 역에 딱 맞는 배우"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1996년 SBS 공채 6기로 데뷔할 당시 그에게서 의사 이미지를 떠올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평이 있었을 뿐 주연급으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준비가 철저한 배우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연습용 수술 장비로 집에서 연습을 하고 실제 수술실도 수시로 참관했다. 레지던트들과 술자리도 자주 가졌다. 그는 "행동은 물론 생각조차 '진짜 의사 장준혁'으로 바꾼 덕에 '의사답다'는 말을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연기자도 조직인=김명민은 대학 졸업 후 줄곧 배우의 세계에만 있었다. '조직생활'보다 '개인 능력'이 중요할 것 같은 곳이다. 그런 그가 비정한 병원조직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살아남는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었을까.

그는 "연기자 세계 역시 일반 사회와 전혀 다를 바 없다"고 대답했다. 비록 과장.국장 같은 승진은 없지만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또 이를 유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범위가 사무실에 국한되지 않기에 어쩌면 더 어려운 경쟁일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마키아벨리' 장준혁을 변호했다. 그의 성공이 비열한 술수나 부유한 장인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수술의 천재'로 불릴 만큼의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실력과 운이 동시에 따라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배우의 인기는 도박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거듭 성공하며 스타 대열에 합류한 김명민 본인의 경우는? 그는 "운이 좀 더 많았다"고 겸손해했다.

◆연기의 묘미는 변화=영화 데뷔작인 '소름'(2001년 작)에서 택시기사 역을 했던 김명민은 그동안 성웅 이순신에서 동네 건달까지 다양한 역을 소화했다. 의사 역할은 이번 드라마로 끝이라고 했다. 다음 영화에선 '형사'역을 맡았다. 짧은 기간에 수시로 역할을 바꾸는 데 지칠 법도 하다.

그는 그보다 더 힘든 게 "한 극중에서 미묘하게 연기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얀거탑'에서도 조금씩 그의 연기가 변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보여 준 날카로운 연기는 사실 상당히 절제된 것이다. 그는 "대본을 받아 본 뒤 장준혁이 외과과장에 오른 다음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후반부에서는 표정.발성에서 더욱 과감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글=김필규 기자, 사진=형예명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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