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토기·석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예니세이강유역의 유스트코바유적, 바이칼호 호안 이르쿠츠크근처의 말타와 뷰렛유적도 이시기의 대표적 유적이다. 특히 어린아이의 뼈가 발굴된 말타와 뷰렛유적에서 각기 출토한 비너스라 불리는 풍요의 여신상은 시베리아에서 처음 발견된 것들이다. 이러한 여신상을 우리가 다산이나 풍요에 연결시켜 추측해보지만, 오늘날 백계러시아여인들이 30세 전후에 거의 대부분 이와같은 여신상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어 여인상은 신상이 아니라 당시의 뚱뚱한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어느 외국인 고고학자의 익살스런 농담도 있었다. 알타이와 시베리아 지방에서 발견되는 구석기시대유물들을 우리의 것과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현재로서는 무리가 따르는 모양이나, 앞으로 그 가능성은 많은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래서 그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1990년 7월23일에서 28일까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열린 「아시아 및 구석기시대층위연대학」이란 학술회의에 우리나라 구석기시대를 전공하는 여러 학자들이 대거 참가하여 그 가능성을 타진해본 것도 좋은 예다. 아무튼 후기구석기시대가 되면 알타이·시베리아·연해주에 이르기까지 유적의 분포범위도 넓어지고, 또 활동도 뚜렷해 진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구석기시대유물이나 생화학연구로 우리 조상의 발원지가 알타이나 바이칼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해도 가설의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필자도 평생 처음 타보는 헬리콥터로 알타이산간지역을 수차례 걸쳐 돌아본 결과 우리의 먼조상과 관련된 이 지역이 가설로 끝날 것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자료가 제시되어 우리의 역사에 편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필자가 해야될 의무로 느꼈다.
이 지역의 발굴은 소련측이 90년부터 개방화물결에 힘입어 일본의 발굴기술과 자본을 배경으로 2년째 진행되고있다.
그러나 일본측 발굴참여자들이 당초의 계약을 묘한 방법으로 변형, 소련인들의 분노를 샀다. 소련인들은 그래서 쿠르간봉토분 개봉때 한국을 비롯해 미국·프랑스·영국·벨기에등의 학자들을 초청하여 일본이 외국인으로는 단독으로 발굴에 참여하는 것을 막은 것 같다.
일본측은 노후한 장비를 새장비 가격으로 산정, 당초계약조건을 이행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발굴유물의 연구와 촬영등의 실익을 챙기는데만 열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측은 이같은 일본의 태도에 실망해 우리나라를 초청, 학자들에게 암시적으로 공동발굴의사를 제의하기도 했었다.
동행했던 문화재관리국 조유전박사는 이같은 소련의 입장변화를 감지, 소련측 관계자들과 인적 및 물절교류에 원칙적으로 합의해 이지역 발굴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같은 합의에따라 현지 발굴이 추운 날씨때문에 중단되는 l0월말쯤 구체적 공동발굴내용등을 협의하기 위해 소련의 발굴책임자가 내한하게 된 것은 발굴참관외에 얻게된 하나의 뿌듯한 결실이기도 했다.
이 지역의 발굴조사의 중간결과를 살펴볼때 우리 문화와 유사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하는 점이 참관단들의 소박한 1차 관심이었다.
발굴유물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때 묘제·토기류·신앙·회화 및 문양등에서 국내 발굴결과와 유사한 것들이 많았었다.
이 지역에서 발굴·수습된 엄청난 양의 토기와 석기들이 노보시비르스크연구소의 5층 자료실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