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펀드 열풍에 청소년까지 돼지저금통 깬다

중앙일보

입력

#1.중학교 3학년인 이다연(기흥중.15)양은 지난해 10월 모아둔 새뱃돈 50여만원을 톡톡 털어 넣어 해외펀드에 가입했다.

평소 재테크 책을 사서 읽고 신문 증권면을 꼼꼼히 읽는 등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던 이양은 주위 친구들에게 중국과 베트남 펀드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이후 이양은 인터넷 검색창에서 '중학생 해외펀드'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자신처럼 펀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검색을 통해 네이버 '증권투자의 길라잡이 주식차트연구소' 라는 카페에 가입한 이양은 펀드 가입절차와 본인에게 적합한 펀드가 무엇인지 꼼꼼히 알아봤다. 결국 이양은 부모님과 함께 은행을 찾아 매달 5만원씩 넣는 적립식 해외펀드인 신한BNP 봉주르차이나 1호에 가입하여 지금까지 운용하고 있다.

#2.대학교 1학년인 이윤석(경희대.20)씨도 2년 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적립식 중국 펀드에 가입했다. 새뱃돈과 용돈을 모아 꾸준히 펀드투자를 해 온 이군은 지금까지 누적 수익률이 60%에 이른다. 매달 10만원씩 2년간 넣었더니 현재 원리금이 총 400만원에 이른다.

해외펀드 열풍이 청소년들에게까지 확산하고 있다. 힘들면서 급여는 짠 아르바이트 대신 펀드를 이용한 재테크로 용돈을 벌려는 청소년들이 많다.

펀드는 예금통장과 마찬가지로 미성년자가 가입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기에 학생들은 은행에서 어렵지 않게 투자할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모아온 새뱃돈으로 해외펀드 투자를 준비하는 유정한(분당고 1년.16)군은 "예금통장을 이자가 너무 적어서 고민하던 중 해외펀드 투자를 시작하게 됐다"며 "돈이 어떻게 늘어나는지 미리 배우고 싶다"고 투자의지를 밝혔다.

고정수입이 없는 10대들은 대부분 새뱃돈이나 용돈을 쪼개서 펀드 투자를 한다. 따라서 뭉텅이 돈을 투자하는 거치식보다 소액을 꾸준히 적립하는 해외펀드가 인기다.

중.고교생 사이에서는 '투자 클럽'까지 만들어 본격적으로 펀드 정보를 나누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학 등록금에 보태기위해 아르바이트 비로 펀드가입을 했다는 안영진(분당고 1년.16)군은 "인터넷 사이트와 관련 서적을 통해 알아보고 펀드에 관심있는 친구들과 정보를 교환한다"고 말했다.

성인들이 인터넷에 만든 해외펀드 카페 등에도 청소년들의 질문이 줄을 잇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아이디 'klj0402'인 네티즌(중3)은 "용돈 100만원을 모았는데 해외펀드 투자를 하고 싶다"며 "중국이 좋은지 베트남이 좋은지, 얼마씩 몇년을 넣어야 좋은지 알려달라"고 물었다.

아이디가 'esjesy'인라는 네티즌(고3)도 "비과세 해외펀드인 미래에셋 인디아솔로몬주식형과 솔로몬주식형 중에 어떤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며 아주 구체적인 정보까지 물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유홍준 교수는 중.고생이 해외펀드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경제에 관심이 집중됨에 따라 학생들이 실물경제에 관심을 갖고 세계화 흐름에 맞춰가면서 해외펀드와 같은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시장에 대한 안목을 키워나가며 경제를 배운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교수는 "다만 학생 수준에 맞는 범위와 규모 안에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TV 프로그램의 영향도 크다. 청소년에게 친숙한 연예인들이 출연해 경제와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면서 자연스럽게 투자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펀드에 투자하는 중.고등학생 중 MBC '경제야 놀자'와 KBS '경제비타민'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투자를 하게 됐다는 학생들이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한국 청소년은 '금융 IQ'가 낮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작년 말 금감원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 고등학생 금융이해력지수(FQ)가 48.2점으로 미국 고등학생보다 4점이나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학생들은 은행.신용카드 이용법이나 펀드.주식 같은 금융상품 이해와 같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이같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체험경제교육교사 연구회에서 활동하는 경제교사인 우원식(서울 명덕고)씨는 "고등학생들이 경제를 직접 체험하고 이해하는 것은 긍정적이다"며 "다만 단순히 돈 불리기에만 매달리다 보면 잘못된 가치관 심어줄 수 있으니, 학교 정규과정에 금융 관련한 교육을 하는 등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턴기자 최중혁(성균관대 경영학과 3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