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이야기'의 가장 큰 잘못은 피해자와 가해자 뒤바꿔 묘사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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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만주철도에서 일했다는 당신 아버지의 당시 정확한 직책은 뭡니까?"

'요코 이야기'의 저자 기자회견이 열린 15일 (현지시간) 오후 미국 보스턴 교외의 '피스 애비 (Peace Abbey)' 본부.

'난징(南京)'이라고 씌여 있는 검은 티셔츠 차림의 한 미국인이 이 책의 저자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슨(73)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난징(南京)은 일제가 중국인 30만명이 잔혹하게 살해한 '남징 대학살'이 자행됐던 중국 도시. 그는 일제 만행의 상징인 '남징 대학살'을 의미하는 옷을 입고 질문을 퍼부어 요코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은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 '731 부대'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다니엘 바렌블랏트였다.

바렌블랏트는 2005년 731부대의 잔혹상을 고발한 '인간성에 대한 저주(A Plague upon Humanity)'(사진)를 출판,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었다. 세계적인 출판사인 '하퍼 콜린스'에서 발간한 저서를 통해 "일제는 만주에서 중국인 남녀노소를 상대로 끔찍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고 주장하며 구체적인 증거까지 제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랬던 그가 '요코 이야기'의 의혹을 파헤치는 선봉에 나선 것이다.

바렌블랏트는 요코를 지지하기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대다수의 미국인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오직 그 만이 요코의 소설이 사실과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요코 이야기(So Far From Bamboo Grove'를 크리스포퍼 콜롬부스가 쓴 '제노아 저 너머 (So Far From Genoa)'와 비교하며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했다.

"'제노아 저 너머'는 1492년 서양인으로서는 처음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콜롬부스의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된 역사 소설인데 반해, 요코 이야기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허구와 잘못된 역사 해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의 가장 큰 잘못은 피억압자와 억압자, 피해자와 가해자를 거꾸로 묘사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요코 이야기' 논란에 뛰어들게 된 것은 자신이 731부대 전문가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코의 아버지가 731부대 고위 간부일 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한국인 학부모들이 그를 찾아가 진위 여부를 문의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학부모들의 성실하고도 자세한 설명에 감복했고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 소설의 의혹 규명에 앞장서게 됐다"고 말했다.

바렌블랏트는 현재 그는 요코의 아버지가 731부대 간부였을 가능성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하버드대와 UCLA에서 공부한 바렌블랏트는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생화학 무기 개발계획을 폭로하는 글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보스톤=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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