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 하원 위안부 청문회, 일본은 부끄럽지 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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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가 어제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환경소위 주최로 열렸다. 미 의회 사상 처음 열린데다 한국인 2명 외에 네덜란드인 얀 러프 오헤른도 증인으로 출석함으로써 위안부 피해가 아시아만의 일이 아닌, 전 세계적 이슈임을 생생히 드러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는 여성학대.인권유린을 생각하면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과거사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번 청문회는 지난달 미 의회에 제출된 위안부 결의안의 외교위.본회의 채택을 위한 첫 절차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비슷한 결의안이 여섯 차례나 제출됐지만 일본의 집요한 로비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반인륜적 전쟁범죄에는 시효가 없다는 점을 전 인류에게 각인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 측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가토 료조 주미 일본대사는 아태환경소위에 보낸 서한에서 "일본은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을 인정했고 피해자들에게 보상도 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일부 정치인들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군 개입을 일부 인정한 93년의 '고노 담화'를 뒤집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심지어 아베 신조 총리도 총리 취임 전 "종군위안부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전에도 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이었다. 종군위안부의 존재가 드러나자 "민간업자가 한 짓"이라고 둘러대다 강제성이 밝혀지니까 마지못해 시인한 뒤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만 느낀다고 발뺌했다. 95년에는 '아시아 평화기금'이란 것을 만들어 정부 예산 아닌 민간 모금 형식으로 돈을 마련해 피해자들을 무마하려고 시도했다. 한편으로는 문부과학성 등이 역사교과서의 위안부 기술 삭제를 종용하곤 했으니 불신만 높아지고, 급기야 미국 땅에서 청문회가 열려 국제적 망신을 사게 된 것 아닌가. 일본은 이제라도 결의안이 촉구한 대로 총리의 공식 사과 등 제반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