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59. 코코 샤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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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37년 자신이 살고 있던 프랑스 파리의 리츠 호텔에서 포즈를 취한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사진=샤넬]

1971년 세계적인 디자이너 코코 가브리엘 샤넬 여사가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마침 나는 그해 연말 파리에 있었다. 어느 날 아침 TV 뉴스를 통해 샤넬 여사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디자이너.패션모델.재단사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샤넬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당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시 외곽에서 시내로 출퇴근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은퇴 15년 만인 71세에 패션계로 돌아오게된다. 그리고 그녀는 일하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의상은 무엇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끝에 어떤 디자이너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의 의상을 선보였다.

당시 패션계에선 엄청난 '도박'이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미디'니 '맥시'니 하며 새로운 패션의 실루엣을 속속 내놓고 있는 시점에서 샤넬 여사가 발표한 스커트는 타이트도 플레어도 아닌 무릎 바로 밑까지 내려오는 단정하고 평범한 A라인이었다. 재킷은 어두침침한 검은색 니트로 만들었다.

샤넬 여사의 스타일화(畵)만 보고 디자인을 샀던 미국 바이어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평범하게만 보였던 샤넬 스타일은 6개월 만에 미국 전역에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온 미국이 샤넬 열풍으로 들끓었다.

"나는 논리적이다. 내 직업은 여성에게 옷을 입히는 것이다. 옷을 입고 걷지도 못하고 달리지도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같은 샤넬 여사의 말이 실린 책을 읽다 보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그 중 "나에게 사치(luxury)란 의미는 잘 만들어진 옷을 5년쯤 입어도 계속 입을 수 있는 것이다"고 한 구절은 특히 내 생각과 너무나 같았다.

요즘에도 오랜 고객들이 10~20년 전에 내가 만들었던 옷을 입고 나타나 나의 디자인 감각을 증명해 준다. 요새 노라 노 컬렉션을 보러 오는 분들 중에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이 넘은 단골들이 있다.

2대, 3대에 걸쳐 노라 노 의상을 입어주는 고객들을 만나면 옷을 보는 눈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생각까지도 그 분들과 내가 같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한 마음이 아닐까.

노라 노 옷을 평생 입어준 분 가운데 지금은 은퇴한 이화여대 영문과의 김연옥 교수가 있다. 어느 날 김 교수가 미국에서 온 조카에게 옷을 사주면서 "노라 노 옷은 엄숙한 마음으로 입어야 한다. 그 옷에는 노여사의 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늘 종종 이런 농담을 한다. "나는 한 가지 만큼은 샤넬 여사를 능가할 수 있다. 나는 그녀처럼 15년 동안 쉰 적이 없는데다 90세까지 계속 일한다면 역사상 최장수 디자이너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샤넬 여사는 사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받았다.

노라 ·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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