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특보 보고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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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번은 추석을 지내자마자 홍종철사정특보팀이 고급공무원의 뇌물수수여부를 캤어요. 우직한 성격의 홍특보는 일을 원칙대로 처리해 사정의 칼날이 시퍼렇게 섰었죠.
사정팀은 제조업자들로 구성된 협회·조합 몇군데를 기습해 경리장부를 모조리 압수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추석을 맞아 경제부처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들에게 거액의 「떡값」을 준걸로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홍특보는 뇌물을 받은 공무원 수십명의 명단을 만들어 박대통령한테 올리려고 했죠. 홍특보는 내용이 엄청나니 먼저 김실장에게 보여야겠다 싶어 가지고 갔지요.
김실장은 여기서 브레이크를 걸었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대로 올렸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였죠. 그래서 홍특보는 「그러면 실장님도 같이 들어갑시다」라고 해 김실장도 대통령한테 갔어요. 김실장이 그때 어떻게 박대통령을 설득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박대통령은 그 일을 없던 걸로 덮어두라고 했지요.』
김실장은 이때 어떤 이야기를 진언했을까. 그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했다.
『홍특보의 조사내용을 보니까 한마디로 말도 안되더라고요. 나도 재무·상공부의 차관·장관을 다 거쳐 협회의 추석인사치레가 어느 정도인줄 잘 알거든요.
겨우 구두표나 상품권 몇장뿐이에요. 그리고 관리들은 그걸 받아 혼자 챙기질 않고 여직원이나 수위에게 나눠주곤 하는거죠.
내가 보기에 분명히 협회에서 잔뜩 불려가지고 장부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박대통령한테도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각하, 여기에 적혀있는 관리중에 특히 재무·상공부사람들은 인물됨됨이를 내가 잘 아는데 결코 그럴 친구들이 아닙니다」라는 얘기도 드리고요.
박대통령은 내말을 듣더니 「김실장 이야기가 그렇다니 이 일은 없던 걸로 합시다. 홍특보는 장부를 만든 협회를 다시한번 조사해보시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증언자 Q씨는 이런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김실장이 다른 방법으로 박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이다. Q씨의 주장. 『김실장은 정면돌파를 시도했다는 겁니다. 홍특보가 조사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그대신 박대통령한테 양해를 호소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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